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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Mar 17. 2022

여보, 나 좀 더 쉴게

- 휴직 일기


유산 , 선택지는 다양했다. 2달의 병가, 3 혹은 6 혹은 1년의 휴직, 또는 사. 원한다면 바로 업무에 복귀할 수도 있었다. 정신없이 일을 하면 잡념이 사라질까? 시체처럼 자고  자면 회복될까? 아이 없는 삶을 살아볼까.. 부모님이나 남편에게 의논을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대동소이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 모든 선택지에는 장단점이 존재했고,  결과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리고 나는 1년을 선택했다.


지난 일요일과 월요일에 비가 왔다. 산불 진화에 도움 되는 단비라고 했다. 내 속에서는 여러 생각들이 피어나 열불이 났다. 나이 마흔에 집에 들어앉아 시간이나 죽치고 있자니 한심스러웠다. 파마기가 풀려 미역처럼 눌어붙어 있는 머리카락이, 등산을 계획했는데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기쁜 소식만 들려드려야 할 것 같은 부모님이, 배워라 계발해라 나아가라 새마을운동처럼 떠들어대는 이런저런 콘텐츠가, 아이들 사진을 올리는 지인들의 인스타가, 운동을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한 시간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멀지도 않은 월요일, 그러니까 4일 전 마음이다. (오늘은 3.17 목요일이다)


여보랑 나랑 바통 터치할까?
6월부터는 여보가 휴직해


회사에서 지쳐 돌아오는 남편한테 "여보랑 나랑 바통 터치할까? 6월부터는 여보가 휴직해" 너스레를 떨었다. 농담을 가장한 진심이었다. 회사에 나가면 '무쓸모' 같은 존재의 의미가 찾아지리라. 운동복을 입었다. 눈바디를 제일 예쁘게 만들어주는, 내가 제일 아끼는 운동복으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기깔나게 살림을 했다. 온몸이 흠뻑 젖을 때까지 산책하고/계단을 오르고/뜀박질을 하고/바이크를 타고/근력운동을 했다. 근육이 너덜너덜해지는 느낌이었다. 기분도 나아지는 것 같았다. 책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의 저자 벨라 마키는 '달리기'를 선택한다. 유년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침투적 사고'와 '공황발작' 등의 정신병이 '파경'으로 최대치에 다다랐을 때, 몸을 괴롭히기로 마음먹는다. 오호라, 나랑 비슷한걸? 영국 프리랜서 작가의 상황보다는 내가 나은 것 같아 위로가 된다. (비교는 나쁜 거라지만 내 마음에 평화를 준다면야) 우울의 늪에서 나를 일으키려 발버둥 쳤던 화요일이었다.


그리고 어제. 변덕스러운 내 마음은 기어코 행복을 찾고 만다. 너무 좋아~ 즐거워~ 행복해~ 이런 낯 뜨거운 말을 얼마나 내뱉었는지. 낮에는 화요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살림을 하고 운동을 했다. 산책하고/계단 오르고/뜀박질하고/바이크 타고/근력을 다지는 운동세트를 또 한 바퀴 휘~ 돌렸다. 저녁에 직장 동료들을 만나는 게 달랐을 뿐이다. "나도 갈 거야!"라는 외침에 남편이 나를 끼워준 자리였다. (남편과 나는 같은 회사를 다닌다. 나는 그 회사에서 휴직 중인 사람이고) 걱정도 했다. 침투적 사고, 공황발작까지는 아니지만, 마음 한켠에 있는, 조금씩 사이즈를 줄이고는 있지만 아직 남아 있는, 그것을 톡- 하고 건드는 일이 일어날까 봐. 가령 "몸은 어때요?" "잘 쉬고 있어요?" "아이는 또 가질 생각이에요?"같은 말이 등장할까 봐. 별거 아닐 수 있는 이 말들이, 나한테는 그 일을 떠올려 자동 눈물 버튼을 누르고 말기 때문이다.


눈물은 무슨. 어림 반푼 어치도 없지. 너무 즐거웠다. 후배가 결혼할 배우자를 소개해줬다. 남녀 3:2로 편을 먹고 후배를 괴롭히는(?) 재미가 있었다. 신혼여행지 선택, 내 집 마련에 들어가는 대출금, 공가 쓰고 집에 있고 싶은데 나만 피해 가는 것 같은 코로나까지. 조직개편이 어땠고, 인사발령이 어떻고, 누가 어떤 일로 고초를 겪고.. 회사에 있었다면 난리부르스를 쳤을 화제들도 '김어준 뉴스공장'의 대선뉴스 같았다. 음, 심각하군. 아이고, 그랬어? 큰일이네. 어떡하냐. 진심으로 반응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 회사는 원래 그렇게 돌아가는 거니까. 지구도 원래 잘 돌아가고. 월드피스-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쉬어있었다. 어제저녁 나의 텐션이 어땠는지 안 봐도 비디오다. 오늘도 날이 흐리다. 일, 월, 화처럼. 오늘 계획표에도 월요일처럼 '등산'이 있었다. 오전 등산은 늦잠으로 미뤄졌고, 오후 등산은 흐린 날씨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 글을 '발행'하고 나서는 운동복을 입을 예정이다. 점심때 사용한 그릇을 설거지하고 빨래를 돌리고 운동세트를 또 돌릴 예정이다. 변함없는 루틴이고 시간인데, 지금이 좋다. 충만하다. 왜? 그냥. 내 컴퓨터에 유일하게 붙어있는 포스트잇에는 '휴직 목표'가 적혀있다. 회사 다닐 때 할 수 없는 것들 하기. (1)장기여행 (2)읽기+쓰기. 남편한테 미안하지만 '바통터치' 발언은 회수해야겠다. 월요일에 침울했던 마음. 흥, 개나 줘버리지. 지금 나 너무 즐겁고 행복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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