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발가락 모두 다섯개씩 있는거지?"
2022년 1월 내 생일즈음, 배속의 아이 둘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가슴이 미어진다는 게 이런거구나. 숨을 쉴 수 없다는 게 이런거구나. 눈물과 자책의 시간은 결국 회사 휴직으로 이어졌다.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게, 나를 그저 돌보던 시간. 그러다 느닷없이 두 줄을 보게됐다. 난임병원 5년차 경력이 무색하게, 자연스럽게 갑자기.
그리고 올해 2월 아이가 태어났다. 수면마취에서 깨자마자 남편에게 물었다. 아이가 정상이냐, 무사하냐라고. 노산이다, 유산 경력이 있다, 임신중에 발견하지 못한 유전적 질환이 있을 수 있다.. 다양한 '가능성'에 미혹됐던 임신기간이었다. 37주에는 코로나에 걸려 고열에 태동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만난 아이였다.
출산하고 참 많이 울었다. 아이가 사랑스럽고 예뻐서, 또 내가 너무 힘들어서. 옹알이를 하는 아이가 유일하게 똑바로 발음하는 말이 '엄마'다. 졸립거나 배고프거나 안기고 싶을 때, 놀고싶을 때, 늘 아이는 엄마엄마 하면서 나를 찾는다. 임신을 바랬던 지난한 과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더라도 아이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다. 반면, 아이를 세상에서 만난 후 매 분 매 초 보잘것 없는나의 체력을 절감한다. 자기관리나 건강에는 자신있었는데, 그건 오만이고 독선이었다. 몸이 아프지만 아이를 돌봐야 하고, 시시콜콜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한 건 내 몫이다. 그렇게 올해를, 말 그대로 버텼다.
"엄마라서 할 수 있는거야."
엄마가 왜 대단한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된다. 몸이 부서질 것 같은 순간에도, 아이에게는 미소를 띈다. 머리가 어지럽고 앞이 잘 안보이는 와중에 숟가락을 쥐고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인다. 손목이 팔에서 떨어졌나 싶은 통증의 순간에도 10키로가 넘는 아이를 번쩍 안아올린다. 아프지만, 아이 앞에서는 아프지가 않다. 고통은 순간 잊게 된다. 같은 시기에 출산한 한 엄마가 말했다. 엄마라서 그런거라고.
아이를 키우며 나는 나의 엄마를 생각한다. 매일 필요한 게 없는지 묻는 엄마한테 귀찮다며 매몰차게 전화를 끊는 딸인데. 그걸 아직도 못 고쳤는데. 내 아들이 커서 지금의 나처럼 하면 억장이 무너질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아이에게는 온전한 사랑을 주면서(주려고 노력하면서) 엄마는 잘 쳐다보지도 않는다. 절뚝거리며 아픈 무릎을 붙잡고 밥 챙겨먹으라고 먹을 것을 잔뜩 사다주는 엄마한테 고맙다는 말도 잘 하지 않는다. 나쁜년. 난 왜 이러나 모르겠다.
아이가 나에게 왔다. 선물처럼. 신이 내린 빛처럼. 천사같은 아이는 날 매일 웃게 하고 감동받게 한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나는 아이와 함께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겠지? 아픈 몸을 당신 손으로 주물러가며, 본인 밥은 굶어가며, 아이에게는 영양가득 이유식을 만들어주면서. 출산으로 만난 아이는 나를 매 순간 기쁘게한다. 그런데 자꾸 엄마가 생각나 슬프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