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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식이 May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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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지난 한 달간 넘어지거나 응급실 방문 한 적 있으세요?”

“아니 없어.”

“지난 삼 개월 간은요?”

“뭐, 한 두 달 전 쯤에 잠깐 넘어진 적은 있지만. 그냥 멍 좀 들고 그랬는데 나 혼자 일어났어. 넘어졌다기 보다는 미끄러졌달까.” 

“그럼 그 때 병원은 안 가셨구요?"







여기 캐나다에서는 노인들이 요양원에 들어가지 않고 가능한 한 오래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그들에게 여러가지의 지원하는데, 그 중에 일주일에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PSW(Personal Support Worker) 즉 간병인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Social Worker (사회복지사)나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커뮤니티로 나가 클라이언트들을 방문 하여 그 필요를 재확인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서비스 내용과 시간 등을 조정한다. 거기에 클라이언트들의 PSW들에 대한 불만사항, 혹은 반대로 PSW들의 클라이언트에 대한 불만사항을 해결 하는 것까지가 현재의 내 일이다. 


지난 4월부터 5월 중순인 지금까지 총 스물 다섯 명의 노인 분들 즉 내 클라이언트를 만나 어세스먼트를 진행했다. 혼자 사는 이른바 독거 노인도 만났고, 배우자가 함께 사는 집도 방문했다. 싱글인 자녀와 함께 사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마주 보고 앉아 인터뷰를 하듯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기도 하지만, 경력이 늘고 일에 익숙해지면, 그냥 한 45분에서 1시간 정도 대화를 재밌게 나누고 나면 내 손에 든 10 페이지 정도의 어세스먼트 질문지에 들어갈 대답은 대충 다 나오게 된다. 


그리고 캐나다라는 나라의 특성상 이민자들이 많아 영어로 대화가 힘들 때는 간혹 자녀가 동반하기도 한다. 자신의 부모님이 이렇게 보조를 받아 조금이라도 독립적으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모두 열 일 제치고 달려와 어세스먼트를 도와준다. 내가 일하는 지역에는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인구가 많고, 중국인, 인도인 등도 꽤 있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이라 아직까지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보진 못했지만, 혹 만난다면 상냥하게 잘 해드려야지. 하고 생각해 본다. 


운전 연수 중이라 현재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거나 방문 사이에 시간이 많이 뜨면 길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낮에 햇빛 받으며 동네를 걷고, 지나가는 길에 커피도 한 잔 사 마실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하며 외근을 나간다. 다행히 요즘은 많이 따뜻해져서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 나쁘지 않다. (5월 중순, 여긴 아직 좀 춥다.) 가끔 공원에 앉아 2~30분 정도 평가지를 정리하거나 하기도 하고. 




방문 두 곳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 기다리면서. 2019년 5월 17일





벌써 8년 정도 이쪽 분야에서 일을 하며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났지만 지금까지는 한 곳에서 같은 분들을 몇 년간 만나 얼굴을 보며 일을 했기 때문에 그 분들과의 추억을 잘 기억 속에 저장해 둘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프로그램을 제공받는 150여명의 클라이언트들을 한 명당 일년 한번이나 두 번 정도 밖에 만날 기회가 없어서, 그냥 다 스르륵 잊혀져 버릴 것만 같아 이렇게 일지 형식으로 기억을 해두면 어떨까 생각했다. 얼굴이나 목소리는 잊어도 그 분들과의 만남에서 내가 느끼고 것들이나 생각했던 것들만큼은 잊히지 않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럼 언제 또 오능가?


“별 일 없으면 내년 이맘때 다시 올 거에요. 갑자기 병원에 실려가신다거나 크게 몸 상태가 안 좋아지셔서 서비스 시간 늘려야 하거나 하는 거 아니면요. 그러니까 웬만하면 일년 있다가 보자구요. 항상 넘어지는 거 제일로 조심하시고요. 아시죠?”


“그래야지. 그래 그럼 뭐… 일년 있다가 또 보자구. 들러, 그래도. 혹시 근처 오면.”


“예, 들어가세요! 건강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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