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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r 16. 2022

엄마, 나는 완벽할 수 없어

영화 <우리 집>, 그리고 윤가은 감독의 산문 <호호호>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오랜만에 신경정신과를 갔다. 병원에선 오랜만에 온 나에게 이것저것 테스트를 시켰고 추가로 인터넷 사이트를 알려주며 성인애착 유형 검사를 진행해달라고 했다. 그 결과를 보던 선생님이 물었다.

- 부모님 계시죠? 가족 있죠? 

- 네 있는데요.

- 결과가 신기해서요. 너무 혼자 살아가는 사람 같아요. 남을 신뢰하질 않네요. 

- 전 부모님 사랑도 많이 받은 것 같은데, 친구들도 많은 편이에요. 

- 그래서 신기하다는 거예요. 홀로 서있는 느낌. 좀 더 의지를 해보세요. 

-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살면서 어른에게 의지해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어른들이 칭찬을 하면서 말을 걸거나 부탁하면 거절한 적도 없고요. 그러고 보니 저는 원치 않게 항상 책임지는 포지션에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가족도, 학교도.... 그래서 그런가 요즘은 나이 먹고 오히려 어리광도 부리고 책임지는 것도 싫어하고 그렇네요.  

- 더 그렇게 해도 돼요. 대신 사람을 더 믿고 의지하세요. 


나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유치원 때는 할아버지 댁에서 살아본 적도 있고, 방학 동안 맡겨졌던 적도 있다. 빨간 앵두나무가 있는 정원 있는 집의 1층에 살았던 날, 식당에 딸린 단칸방에 온 가족이 함께 살았던 날. 그 시절 나는 다양한 방 구조 속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때는 전학을 3번 정도 갔는데 마지막 전학은 6학년 2학기 때라 이미 무리가 만들어진 아이들 사이 적응하지 못하고 홀로 등하교를 했다. 그 전 학교에서는 반장, 부반장도 하고 친구들도 많았는데, 6학년 2학기 전학은 너무나도 외로웠고 그 시절 낙은 하굣길 농협에서 사이다 한 병을 사서 빨대로 빨아 마시며 걷는 것이었다. 홀로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빨리 졸업하고 싶다고 간절히 빌었다. IMF를 겪은 후라 우리 학교는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는데 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시간 때도 따로 같이 놀 무리를 만나지 못해 혼자 앉아있었다. 그때는 정말 이사가 싫고 전학이 싫었다. 내 세계가 하나 만들어지려고 하면 금방 모래성처럼 무너뜨리고 나를 새로운 곳에 던져놓는 현실이 싫었다. 


윤가은 감독의 산문집 <호호호>를 보았다. 책을 보고 곧이어 영화 <우리집>을 봤다. <우리들>은 본 상태였지만  <우리집>은 미루다가 드디어 보게 됐다. 타칭 여름 덕후, 자칭 아이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여름이라고 말하는 윤가은 감독. 그녀의 대표작인 <우리집>, <우리들> 두 작품 모두 여름에 촬영됐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도 끊임없이 달리는 우리들. 뜨거운 태양 아래 빨갛게 익어간 방울토마토 하나를 입에 물고 신나게 달리는 어린이들. 그 시절 우리가 가장 두려웠던 건 부모님의 화난 얼굴과 목소리, 가족 간의 다툼, 그리고 친구들과의 이별이었다. 

 

영화 <우리집>의 주인공 하나는 부모의 이혼을 앞두고 가족의 붕괴를 막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딸이자 동네 동생들인 유미, 유진이의 잦은 이사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용감한 언니다. 

- 내가 지킬 거야, 우리 집. 너네 집도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자신이 해낼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영화 끝에 인정한 순간 억지로 어른스러워지는 안쓰러운 아이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유진이와 유미는 잦은 이사로 동네에 친구가 없다.   

-언니는 계속 우리 언니 해줄 거지?

유진이와 유미는 친언니 같던 하나에게 의지했고, 또다시 이사로 인해 이별하게 될 것을 예감하고 하나에게 계속 언니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두 자매를 뒤로한 채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하나는 집으로 돌아가 마지막까지 착한 아이답게 저녁밥을 차린다. 가족에게 밥 먹자고 말하는 하나는 변함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표정이 한층 어둡고 어른스러워 보인다. 요리가 취미인 하나는 항상 재료를 혼합해서 함께 먹어야 맛있는 음식, 계란 샌드위치, 오므라이스, 계란 라면 등 을 만들었다. 하지만 엔딩에서 하나는 각자 따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인 계란 프라이를 준비한다. 이 어린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족의 화합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영화 속 하나는 어른스럽고 완벽한 딸이다. 하지만 어린이는 완벽할 수 없다. 분명 어린이적 한 부분이 무너지고 세계에 균열이 왔으며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너는 참 어른스러워, 우리 딸은 엄마가 의지할 수 있겠어. 넌 혼자서 잘하잖아. 이런 어른들의 말들이 얼마나 나를 무겁고 힘들게 했었는지 떠올린다. 방과 후 부모님 가게 일을 돕고 계산을 하던 13살. 혼자 아파트 주차장에 쪼그려 앉아 1시간을 울다 눈물 자국을 닦아내고 집으로 돌아가 엄마 아빠를 화해시켰던 어느 여름밤. IMF 이후로 엄마가 시장에서 사 온 옷 몇 벌로만 살아갔던 중학생. 관심 있는 남학생이 주말에 같이 도서관을 가자고 했을 때 교복 말고 입을 것이 없어 거절했던 10대의 여름날.  

홀로 서서 걸어간 시간들을 영화 속 하나를 보며 되감아 본다. 그 시절 짙었던 어둠을, 힘겨움을 떠올리니 <우리집>은 어느 영화보다 잔인하게 느껴진다. 

어른이 된 이후, 그러니 내가 돈을 벌고 독립을 하게 된 이후부터 나는 조금씩 어리광쟁이가 되기 시작했고 하고 싶은 일은 참지 않고 다 하려는 성격으로 변했다. 이제 나는 나만 책임지면 되니까. 그래서인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꿈도 많다. 

우리 딸은 혼자서 참 잘하네. 운이 좋네. 엄마 속에서 어떻게 이런 게 나왔을까? 엄마 그건 운이 아니야, 내가 졸라 열심히 노력한 거야. 계획적이지 않던 내가 왜 계획 적여졌는 줄 알아? 그렇지 않으면 혼자 버텨낼 수가 없으니까. 아무 곳에도 의지할 곳이 없으니까. 세상에 완벽한 딸은 없어. 그러니 하나야, 너도 그렇게 완벽하지 않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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