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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y 16. 2022

가끔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가 나올 때가 있어

영화 ‘유 콜 잇 러브(L'Etudiante, 1988)’의 사운드 트랙


이른 아침 미팅에 참석하려 급하게 택시를 탄다. 가끔씩 기사님이 틀어둔 라디오 방송이 바쁜 와중에도 귓가를 간질인다. 때로는 <굿모닝 FM>, 가끔은 <오늘 아침 000입니다> DJ의 소개와 함께 상쾌하고 듣기 좋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지하철을 타는 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개를 돌려보면 뉴스 기사를 보는 사람들 사이로 라디오 채널, 팟캐스트 목록을 뒤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의 하루는 누구의 목소리와 음악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나는 교내 방송부 아나운서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매주 수요일마다 ‘색깔 속의 시네마’란 점심 방송을 진행했다. 영화와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을 소개하는 이 방송에서 수없이 반복해서 들은 노래가 있다. 내가 진행한 방송의 오프닝과 엔딩 시그널, 바로 영화 ‘유 콜 잇 러브(L'Etudiante, 1988)’의 사운드 트랙이다. 3년 내내 들은 탓인지, 영화 속 음악인 ‘Thème d'Édouard’와 Karoline Krüger의 ‘You Call It Love’는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귓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멜로디다.


  영화에서 주인공 에드워드와 발렌틴은 자주 만나지 못하는 연인이다. 밤마다 길고 긴 전화 통화를 하며 사랑을 확인하지만 서로의 따뜻한 숨결과 체온을 느끼지는 못한다.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 애정으로 한껏 들뜬 두 사람을 보다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 때쯤 에드워드는 경음악 한 곡을 작곡한다. 그 음악이 앞서 소개한 ‘Thème d'Édouard’이다. 에드워드가 수화기 너머 연인 발렌틴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나는 음악이 마음을 전하는 도구라는 걸 새삼 느꼈다. 물리적으로 떨어진 이에게 전하는 소리란 점에서 에드워드의 음악은 라디오라는 매체의 본질과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내가 라디오를 듣게 된 것은 1997년, IMF가 집안을 휘저어 놓은 이후였다. 직장을 잃은 아빠가 집에서 멍하니 TV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엄마는 식당 설거지를 마치고 늦은 밤에나 집으로 돌아왔다. 어릴 적 반장, 부반장을 도맡으며 똑 부러지는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오래지 않아 말 없고 어두운 아이로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무렵, 집안을 일으키고자 부모님이 연 작은 가게 포스기 앞에서 방과 후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시장에선 예의 바르고, 손님들에게 살갑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학교에서는 점점 존재감이 지워졌다. 왜인지 탓하는 마음에 거실에서 가족들 얼굴을 마주하기 싫었다. 그렇다고 방안의 정적을 견딜 수도 없어 매일같이 틀어놓은 것이 라디오였다.

  라디오 속 사연의 주인공들은 나와 같은 10대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연애로 고민을 호소하는 20대들이 주를 이뤘다. 그때 내 어두운 작은 방은 달콤하거나 애절한 연인들의 사연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래들로 가득 차 올랐다. 아직 첫사랑을 경험한 적도 없었지만 변함없는 사랑 혹은 설렘을 표현한 가사와 아름다운 음률은 연애소설을 읽는 것처럼 온몸을 부드럽게 간질였다.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몇 장 없을 만큼 타인에게 무심하고 관계란 것에 노력 않던 나이지만 라디오를 들을 때만큼은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는 교내 방송부 모집 공고를 봤다. 그 이전 내 삶은 초등학교 시절 어두워진 마음에서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로 거처를 옮겼지만 같은 재단 소속이라 동일한 교문을 지나 바로 옆 건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선생님마저 일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발령이 나 같은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환기 없는 공간. 그나마 다른 교복을 입고, 다른 운동장을 쓰고, 조금 더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차라리 위안이랄까. 하지만 방송부 모집 공고를 본 순간 지난 4년간 라디오가 만들어준 나의 취향을 타인에게도 들려주고 싶다는 알 수 없는 바람이 생겼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오디션 순간 초능력처럼 찰나의 당당함만 있었던 내가 어떻게 방송부에 붙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면접에서 한 말은 ‘라디오를 많이 듣습니다’라는 뻔한 소리뿐. 중학교 때 잠시 좋아했던 H.O.T. 이야기를 했더니 “나는 팬클럽이야!”라고 반갑게 웃어주던 월요일 가곡 방송 담당 선배가 뽑아준 것일까.

  방송부가 된 이후 학교생활은 무척이나 바빴다. 학교 등교와 동시에 방송실의 장비를 체크하고 그날 진행할 방송 노트를 제출했다. 점심시간이면 나의 방송을 진행하거나 다른 부원의 방송 오퍼레이팅을 도왔다. “2학년 5반 학생들이 김민지 양의 생일을 축하하며 신청한 곡입니다.” 식사 후 청소 시간에는 청소를 하지 않고 활기찬 청소 시간을 만들어줄 음악을 선곡했다. 일주일에 2번 정도는 학생들의 생일을 소개하고 신청곡을 틀었는데 축하 인사와 기쁜 마음을 전하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매주 수요일, 색깔 속의 시네마에서 참 많은 영화 음악을 선곡하고 플레이했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시절 취미였지만 어쩐지 뻔한 것 같아 ‘취미란’에 좀체 적지 못했던 ‘영화 감상’이 이때는 크게 도움이 됐다. 비디오 가게에서 주로 대여한 영화는 로맨스 장르였고, 그 기억을 따랐는지 나는 방송을 진행할 때 주로 90년대 영화 속 음악을 자주 선곡했다.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 1994) ‘California dreaming’, 러브레터(Love Letter,1995)의 ‘A winter story’, 노팅힐(Notting Hill, 1999)의 ‘She’처럼 90년대를 휩쓴 인기 영화에 삽입된 곡들이었다. 가끔 선생님들이 소장한 7~80년대 영화 LP를 부탁받아 틀기도 했다. 사랑의 스잔나(Chelsia My Love, 1976) 속 ‘one summer night’나 바그다드 카페(Bagdad Cafe, 1987)의 ‘Calling you’는 그때 처음 접한 곡들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참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다음날 학우들에게 음악을 틀어주려면 밤마다 새로운 곡을 찾아내야 했다. 노래를 알지 못하면 하루 큐시트는 물론, 주마다 돌아오는 코너를 예전에 틀었던 음악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 라디오는 그때도 원고 작성과 선곡에 큰 도움이 됐다. 연애가 고민인 친구를 생각할 때는 라디오에 나오는 미니시리즈 같은 사연이 마음에 들어왔다. 대체로 성적 때문에, 가끔은 가난에 지친 탓에 가족과 불화한다는 학생의 사연이 나올 때면 마치 내 일인 양 귀를 기울여 듣기도 했다. 친구와의 미묘한 감정싸움을 겪는다고 토로하는 이야기가 나올 땐 뭔가 새로운 해법이라도 있나 싶어 가슴을 두근거리며 집중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짓궂은 DJ가 사연 속 청취자를 놀릴 때, 혹은 위로를 건넨다며 진심이 담긴 말을 끄집어낼 때 함께 재생한 음악도 명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무의식 속에 반주처럼 깔렸던 것 같다.

  방송부 생활은 그렇게 조금씩 나를 바꾸어 갔다. 어느 날엔 학교 행사에서 사회를 봤고, 어느덧 학교 앞 음반가게 주인아주머니와는 절친한 사이가 됐다. 밝은 붙임성이 몽글몽글해진 마음 사이로 자라났달까. 기적처럼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뀐 건 아니었지만, 반에서 조금의 존재감을 보일 만큼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방송부 생활이 이뤄진 고등학교 때 만났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함부로 구겨 버린 메모장 저럼 긴 시간 새카맣게, 쪼글쪼글하고 작게 뭉쳐져 있던 마음도 더불어 조금씩 펼쳐졌던 것 같다.


  발렌틴과 에드워드가 키스하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 영화 <유 콜 잇 러브>는 내내 미묘한 긴장감과 불안이 존재했다. 영화 초반 발렌틴은 대학교수 자격시험을 준비 중인 바쁜 학생으로, 순회공연 중인 뮤지션 에드워드와 스키장 리프트에서 우연히 만난다.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에드워드가 저녁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으로 시작한 둘의 관계는 “지금 당장 영화 같은 키스를 하고 싶어요”라는 발렌틴의 대사처럼 급진전하지만 이내 허물어진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하길 원하는 발렌틴과 갈등을 피하고 한 가지에 깊이 몰두하지 못하는 에드워드는 애당초 불과 얼음처럼 다른 사람이었단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한때 그들을 이어 붙인 것 또한 서로 간의 차이였기에, 이별의 결정적인 원인은 순회공연을 다니는 에드워드와의 장거리 연애와 전 애인들이 만들어낸 오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이별한 발렌틴이 교수 임용 구술시험을 치르는 장면으로 채워진다. 시험 주제는 몰리에르의 희극 <인간 혐오자, Le Misanthrope>에 나타난 사랑을 해석하라는 것이다. 희극 속 알세스트는 어린 미망인 귀족 셀리멘을 사랑하지만 한편으로 경멸할 수밖에 없다. 셀리 맨의 도덕적 결점을 확인하고 비난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딜레마를 요약한 희극의 부제는 ‘사랑에 빠진 우울한 사람’이다. 발렌틴은 알세스트의 사랑을 나름대로 해석하던 중 자신의 시험장에 찾아온 에드워드를 발견한다. 그전까지 알세스트의 행동을 비난하는 해석을 구술하던 발렌틴은 순간 자신들의 사랑을 희극에 대입해 본다. “알세스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날 사랑한다면 날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나도 지금 그대로의 당신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죠.” 시험을 감독하던 교수는 뜨악한 표정이다. “주제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하지만 발렌틴의 눈은 이미 교수가 아닌 에드워드를 향해 있다. 그리곤 그를 바라보며 알프레드 뮈세의 시 <사랑은 장난으로 하지 마오, On ne badine pas avec l'amour>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것은 불완전한 남녀의 결합입니다.” 시험이 끝나고 두 사람은 첫 데이트 때처럼 영화 같은 키스를 나누며 영화는 끝이 난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간 것도 벌써 오래전 일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혼자 살기 시작한 지도 꽤 됐다. 어릴 적 라디오를 듣던 버릇 때문인지 대학에서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고도 나는 음악이 있는 일터로 이끌렸다. 음악 콘텐츠 기획자 일을 하며 음악 영상과 오디오를 기획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이 일도 라디오 방송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음악을 선곡하고, 숨겨진 뮤지션을 찾는다. 좋은 음악과 뮤지션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길 바라고 노력한다.

  물리적 시간이 흐른 만큼 내 성격도 사회적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적막은 아직도 어색하고 가끔은 높은 벽 앞에 선 듯 마음이 갑갑하다. 그럴 때면 나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자 라디오를 튼다. 겨울날 아침에 일어나 서늘한 냉기 속에 조금의 온기를 찾고자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 속 활력 넘치는 목소리, 출근을 준비하며 듣는 가벼운 음악, 잠들기 전 하루를 위로하는 사연들. 시간이 흘러도 타인의 소리로 위로받고자 하는 건 여전하다. 알지 못하는 타인의 이야기는 돌아서면 잊어버릴 만큼 휘발성이 강하지만, 금방 사라질 목소리와 감정이라도 순간 나의 외로움을 채워주기에 아직까진 이만한 게 없다.

어린 시절 마냥 동경과 위로를 주던 공중파 라디오 제작자에게도 삶의 굴곡이 있었으리란 생각을 요즘은 한다. 그리고 어린날의 나와 지금의 나처럼, 누군가도 라디오 방송에서 위로받으리란 생각도 해본다. 

“가끔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가 나올 때가 있어. 노래를 듣고 나선 들은 것만으로 행복해지기도 해. 만약 평생 동안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 넌 그런 노래일 거야.” 영화 속 대사가 너무 달콤하고 인상 깊어 ‘유 콜 잇 러브’를 본 후 한동안 나의 블로그와 노트에는 이 문구들이 적혀있었다. 내가 만든 방송과 선곡도 누군가에게 가닿고 있을까. 위무하는 자와 위로받는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나는 흠모한다. 그리고 마음을 전달받기만 하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전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기적을 믿는다. 그 과정이 꼭 논리적 이리란 법은 없다. 영화 속 발렌틴과 에드워드처럼, 때로 작은 마음을 전하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기에.

  콘텐츠 기획자로서 한정된 예산과 트렌드라는 압박은 끊임없이 존재한다.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조율하는 일에 진이 다 빠졌다가도, 그런 꿈같은 순간을 생각하면 ‘그래, 그래도’ 같은 어설픈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짐의 끝에는 늘 어린 시절 수없이 내뱉었던 엔딩 멘트가 조용히 달라붙는다.

“지금까지 색깔 속의 시네마, 진행에 조혜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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