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인생 / 호주여행의 추억과 동물원 광고
계획은 심플하고 뷰리플했다.
시드니에서 렌터카를 빌린다.
내비게이터에 골드코스트를 찍는다.
한큐에 달려간다.
렌터카를 빌리기로 결정한 게 (새해 휴가기간 중의) 토요일 오후였다는 게 함정이었고, 호주의 네비게이터가 원시적이라는 게 함정이었고 골드코스트까지 대략 900킬로미터가 된다는 게 함정이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게다가 처음 해 보는 좌행운전(운전석이 오른쪽)도 까다로운 점 중 하나였다. 이런 여러 개의 점들을 빼야 여행은 순조로울 것인데 그 점들은 무척이나 견고해서 성가시게 걸리적거렸던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2015년 1월(정확하게는 14년 12월 28일)의 결정은 다소 전격적이고 무모한 데가 있었다.
"남쪽으로 튀어!"
이 결심 하나만으로 시드니까지 가는 비행기도 출발 24시간 전에야 예약했으니 계획이랄 게 생길 시간이 당최 없는 여행이었다. 이건 뭐 '간만에 동해 일출이나 보러 갈까?'할 거리도 아니고... 더구나 문제는,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나홀로 여행이 아니라 주렁주렁 쌍둥이 녀석들과 아내까지 대동한 본격 가족여행이었다는데 있다. 나 혼자라면야 노숙을 하든 햄버거 하나로 때우든 자족하면 될 터인데 가족 부양의 의무는 함께 여행할 때 오히려 압축적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여행가이드보다 더한 스트레스가 함께 하지 않는가 말이다.
각설탕하고,
웹으로 예약했던 렌터카 회사는 예약이 있든말든 칼퇴근하고 문을 걸어 잠근 후였고, 부랴부랴 그 근처를 뒤져서 막 문을 닫으려는 렌터가 회사에 트렁크를 밀치며 들어가 '아무 차나 아무 조건으로나'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차를 인수하는데 목숨을 건 다음, 좌행운전은 1분 만에 마스터하고 복잡한 시드니 시내를 빠져나오는데 진땀을 뺀 후, 우리는 비로소 세계 3대 해변이라는 골드코스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900킬로미터를 내리 달려가던 그 밤의 여정은 한달 남짓의 호주-뉴질랜드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줬다. 어디 동물원에라도 들러서 캥거루 한 번 알현해봐야 할 텐데... 코알라는 알콜 성분이 들어 있는 유칼립투스 잎을 먹으며 하루 종일 그렇게 취해서 잔다는데 그러려면 왜 사나... 뭐 그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새벽 5시 즈음, 사위가 점차 밝아 와서 이국적인 풍경을 다시 드러내고 있는 시간 차가 시골길로 좌회전을 하자 마자 우리는 그대로 손을 뻗어 뺨을 때릴 수 있는 거리에 서 있던 캥거루를 대면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도로교통법은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위험하게 히치하이킹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날랜 나의 운전실력으로 피했기에 망정이지 자칫 로드킬이라도 벌어질뻔 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의 널찍한 농장들은 아침 안개로 자욱해서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는데 아침형 캥거루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가 이쪽으로 고개를 반듯하게 쳐들고는 '한국인 가족 관광객 오셨네?'하는 표정들을 하고 있더랬다. (아아... 사진기술의 미천함이여!)
부랴부랴 뒷좌석에서 잠들어 있던 아이들을 깨워 호주의 흔한 길거루를 구경시켜 주는 것으로 아까 렌터카 사무실을 찾으러 헤맸던 호주 시내의 공원에서 '마침 깨어나서 오찬 중이셨던' 공알라(공원 코알라)를 조우한 것과 세트로 생생 호주 동물 체험의 하이라이트를 삼았다.
길거리에서 소를 만나면 인도에 온 줄 알고
길거리에서 양을 만나면 뉴질랜드에 온 줄 알고
길거리에서 뻥튀기 장사를 만나면 싸우스 코리아구나 하면 될 일.
그렇게 길거리에서 대면한 캥거루떼는 우리 가족으로부터 '길거루'하는 애칭을 하사받고 "우리가 호주에 오긴 했구나"는 느낌을 물씬 전해주었다. 진정한 입국도장은 길거루가 찍어준 것이랄까.
아래 두 개의 광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동물원의 광고로, 우리의 여행과 길거루의 추억과는 다소 다른 각도로 캥거루의 존재감을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눈탱이가 밤탱이 된 사자와 오랑우탄은 어떻게 캥거루를 증명할 수 있는가?] 에 대한 해답은 카피를 보고, 몇 초 간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카피는
THE KANGAROOS HAVE ARRIVED.
BUENOS AIRES ZOO
의역하자면
여러분, 캥거루 아시죠? 발차기도 주먹질도 일품인 호주의 그 녀석들 말이에요. 어떤 분들은 길거루 길거루 하시지만 캥거루의 핵심은 발차기와 주먹질 아니겠어요? 그 녀석들이 우리 동물원에 왔다는 거 아닙니까. 구경 한 번 와보세요. 뭐 그 쯤.
그래도...
동물원에서 만나는 캥거루와 길거리에서 만난 길거루의 차이는 분명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라고 믿는다. 풍경의 한 부분으로서, 삶의 한 풍경으로서 '거기서 살고 있는 존재'와 꾸어다 놓은 존재는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길을 나서는 이유는, 자연 그대로의 길의 풍경을 보기 위함이지 울타리를 쳐 놓고 꾸며놓은 것을 보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나는 무모했던 지난 겨울의 여름여행을 미화하고 있다. 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