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K Sep 29. 2015

수유 끝났어. 술 사줘.

#광고와 인생 / 브라질의 공익광고를 읽다

애는 잘 크고 있느냐는 톡에 대뜸 후배로부터 날아 온 톡은


오빠, 나 수유 끝났어. 술 사줘.


아 맞다.

후배는 수유 중이라 술 못 먹고 매운 것 못 먹고 커피 못 마시고 라면 안 먹고 콜라 안 먹는 처지였다. 그깟 오박 육일의 여행에도 얼큰함이 사무쳐 김치찌개를 찾고 컵라면을 호로록거리는 게 우리들인데, 아침에 커피 한 잔을 안 마시면 종일 뭔가를 빠뜨린 것 같아 불안하고 초초한 마음에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하루가 되는 게 우리들인데, 그런 울트라 소울 푸드들을 싸잡아 참고 있는, 임신/수유기의 엄마였던 거다 후배는. 그 길고 긴 속박의 시기가 막 끝났다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미치겠는 인고의 세월을 막 헤쳐나왔다고, 교도소 앞의 두부 세르머니처럼 후배는 일단 숨 넘어가도록 시원하게 한 잔부터 하고 기저귀를 갈든 이유식을 만들든 남편한테 한바탕 스트레스풀이를 하든 하고 싶었던 게다.  


엄마가 먹는 것은 그 본성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진다


그래. 나도 애 낳고 키워 본 와이프를 둬서 어느 정도는 안다.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최소 이삼 년은 도를 닦듯 먹을 거 마실 거 가려야 하는 게 엄마 된 여자들의 인생 아닌가 말이다. 트러플도 아니고 캐비어도 아닌 기껏해야 배춧잎 한 장이면 뒤집어 쓸 그 음식들은 그녀들의 인생에 무엇이었더라? 그래, 애를 가지기 전에 그것들은 여자의 일상이었고 피와 살이 되는 양식이었고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작은 무기였고 벗들과 만나 나누는 기쁨들이었지. SNS의 주요 테마였고 시시껄렁한 논평의 주제였고 맛집 리스트였고 집으로 가는 뻔한 루트를 다양한 도형으로 바꾸는 샛길이었고 울적한 날이나 기쁜 날이나 무언가 마무리가 되어줄 것이 필요할 때 마무리가 되어 주는 마지막 접시였지. 그런데 그런 영혼의 음식들을 이제는 철저하게 검증하거나 피해야 할 상황이 되는 것이다.  


어디 일상의 음식들 뿐인가?  

감기에 걸려도 그 흔하고 만만한 감기약을 못 먹는 것은 물론 오래도록 달고 사는 병과 그 병 때문에 오래도록 달고 살던 약도 끊어야 한다. 두통이나 소화불량 따위에는 시간이라는 약만을 처방할 수 있을 뿐. 말하자면 이 시기의 엄마들은 페니실린 발견 이전의 단계로 돌아가 원시상태에서 살아돌아와야 하는 임무를 띠는 셈이다. 죽을 병 아니면 병도 병이 아닌 시기를 뚫고 나와야 하는 거다. 아기를 안고서.    


그런 상황이 왜 불가피한지, 브라질에서 만들어진 광고는 웅변하고 있다.  


바디페인팅을 이용한 광고를 여럿 봤지만 단연 최고!


매운 음식을 먹으면 청양젖이 된다.
카페인을 섭취하면 카페인젖이 된다.


막 표현하면 이쯤으로도 바꿔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이 세 편의 시리즈 광고를 만든 건 콜라젖, 엠에스지젖, 설탕젖, 기름젖 먹이지 말자는 뜻이다. 모유수유기의 엄마 몸이야 어디 제 몸인가? 출산으로 분리되긴 했지만 아직은 아기에 매어 있는 몸. 그저 아이가 스스로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영양분을 대신 전달해주는 택배기사이자 영양공급 기계일 뿐. 엄마의 입과 식도와 위와 장도 젖가슴과 마찬가지로 자기 것이 아닌 때니까.    


 


엄마가 마시는 물은 아이가 마시는 물이 되고

엄마가 먹는 밥은 아이가 먹는 밥이 된다.

요컨대 엄마가 먹는 모든 것은 그 음식의 본성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진다.

이런 일련의 인사이트는 멋진 바디페인팅 비주얼과 아래의 카피로 정리됐다.  

 


Your child is what you eat.

YOUR HABITS IN THE FIRST THOUSAND DAYS OF GESTATION,

CAN PREVENT YOUR CHILD FROM DEVELOPING SERIOUS DISEASES.

LEATN MORE AT SPRS.COM.BR

(엄마가 먹는 것이 아이가 됩니다. 임신 첫 천일 간의 식습관이 아이를 심각한 질병으로부터 지켜줍니다.)




이 광고들을 접하는 순간, 쌍둥이 키우느라 말할 수 없이 고생했던 아내도 생각나고, 갓 백일 지난 조카를 아픈 몸 이끌고 눈물 반 모유 반으로 키우며 고생하는 가족도 생각나고, 몇달 전 후배의 톡도 생각났다. 매우 개별적인 아픔과 고충을 가진 엄마들임과 동시에, 매우 보편적으로 생고생 중인 엄마들인 그녀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 멋진 광고들에 실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의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