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해체쇼 / 지구 반대편의 자전거 광고를 읽다
- 에디슨의 사생팬은 누구라고 생각해?
= 그야... GE 직원들? 발명가를 꿈꾸는 아이들?
- 아니지. 나방들이지.
= 왜?
- 죽자고 달려들거든. 세상의 모든 전구를 향해서.
= ㅋㅋㅋ
인생에 한 번은 불나방이었던, 당신을 위한 광고읽기.
카피는 이 광고의 목적을 매우 정직하게 드러낸다.
이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공공 자전거를 연중 24시간(24/7) 빌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The Buenos Aires Public Bike System Now Runs 24/7.
하지만 '확대된 서비스 이용 시간'을 무식하게 전달하지 않는다. 지구 반대편의 광고장이들은 자전거에 대한 사색을 시작한다. 앞바퀴는 무엇이고 뒷바퀴는 무엇인가? 그리고 앞바퀴와 뒷바퀴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제 딱딱한 정보전달의 광고가 차라리 '열정'에 대한 광고로 변하기 시작한다.
갓난아기가 엄마의 젖가슴에 품는 열정. 다람쥐가 도토리에, 나방이 전구에, 개가 자신의 꼬리에 갖는 뜨거운 갈망을 가져다가 자전거 광고에 붙여 버린다. 갈망을 일으키는 것들을 앞바퀴가 되고, 갈망하는 것들은 뒷바퀴가 되었다.
그렇다고 마냥 낭만에 빠져 만든 광고는 아니다.
이 시리즈는 뼛속까지 '과학적인' 광고이기도 하다. 방향을 잡아주는 앞바퀴와 동력을 담당하는 뒷바퀴가 나누어 가진 기계적 몫을 잘 알고 표현하지 않았는가? 다리근육이 생산한 힘은 페달과 체인을통해 뒷바퀴로 전해지므로, 자전거를 달리게 하는 에너지는 뒷바퀴에 있음을 알고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러고보니 자전거만큼 자립이라는 개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아빠나 엄마, 혹은누이와 형의 손에 기대어 겨우겨우 전진하던 인생이, 마침내 좌로도 우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내 균형감각과 내 몸의 힘에 의해 전진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오직 달려야만 스스로 설 수 있다는 진리를 체득하는순간! 그 순간은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서 찬란한 독립과 자긍심의 순간으로 남아, 닳도록 되새겨지면서 즐거움의 한 전형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이 광고는 자전거에 대한 오랜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이제 '인생에 대한 광고' 같기도 하다.
(이 광고를 만든 녀석들의 내공은 깔수록 더 대단해 보인다.)
형식 또한 자전거가 가진 낭만과 어울리는 일러스트레이션이다.
사람은 사람대로 힘을 다하고, 기계는 기계대로에너지의 증폭과 전환에 힘쓴다. 둘은 균형을 이루어, 어느 하나가 빠지면 성립되지 않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사람 없어도 스스로 굴러가는 기괴한 일 따위가 자전거에는 없고, 기계가 통제를 넘어 수십 수백의 생명을 위험하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자전거 타기에는 없다. 이 광고는 사람과 기계가 맺은 원시적이고 낭만적인 관계를 잘 안다.
한편으로, 이것은 '잃어버린 꿈'에 대한 광고이기도 하다.
인도(India)가 앞바퀴가 된 사람은 인도에 가야 한다. 직장 쯤은 때려 치우고, 어쩌면 가족의 한숨도 감내하고 깨달음의 성지로 떠나야 한다. 나의 앞바퀴는 무엇이었던가? 신(神)이 있었고, 여인이 있었고, 정치사회적 대의가 있었고, 결혼과 자식이 있었고, 일과 성공, 골프와 광고와 술이 있었다.
그런데 뭐랄까, 이전의 것들이 바람 빠지고 난 후 앞바퀴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들은 왠지 목숨 걸고 쫓아가지는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애인이 사무쳐 새벽 세 시의 눈 내리는 도시를 달려가던 열정을 아직 지니고 있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으로 밤을 새던 열정을 아직 지니고 있는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광고다.
그렇다면 자전거 광고이기도 하고 열정이나 인생광고이기도 한
이 네 편의 독창적인 작품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아, 그렇지!
* 이 글은 [월간에세이] 2015년 9월호에 연재한 글을 다시 쓴 것입니다 - 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