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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 Mar 07. 2017

나, 언어의 순서를 잃었으니

듣는 자, 셀프로 잘 끼워맞춰 알아들으시길.

지진이라도 나서, 

겨우겨우 줄을 맞추고 모양을 맞추고 색깔을 맞춰 

여백도 마련하고, 누울 공간도 네모 반듯하게 정해놓았던 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것처럼, 


내 안의 언어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어순(語順)을 찾지 못한 주어와 목적어와 동사들이 

제각각 어리둥절하며 쭈그려있다가는,  

떠밀리는 놈이 먼저 튀어나오고

뒤늦은 놈은 그 놈대로 마음이 급해서 뒤따라 나오고..

그래서 방금 내 입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말들인데도 

내것 같지 않고, 

내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예전엔,

말들을 깨끗한 진열대에 순서대로 늘어놓고

'어때, 내 언어가 참 질서정연하지 않니?' 라든지

'어때, 이번엔 이렇게_의도적으로_멋있으라고 순서를 바꿔봤는데 어때?' 였다면 

지금은 보따리 하나에 

깨달았거나 들었거나 기억에 남아 있는 언어들을

우리 것이나 외국의 것이나 할 것 없이 몰아 담아 넣고 다니며 

옷매무새도 갖추지 않고 손님 앞에 털썩- 

들이미는 꼴. 


부끄럽고 

걱정스러운 

나의 말들 앞에서... 

할말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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