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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 Apr 26. 2019

새벽 3시에 일어나 버렸다

귀하게도 새벽에 일어나 버렸다. 

'귀하게'와 '버렸다'는 어울리는지?

기이하게도, 가 맞는지도 모른다. 아님 소중하게?

가끔은 이렇게 서비스만두처럼 전에 없던 시간이 주어진다. 

(사실은 엊저녁에 과음을 한 탓이고, 속이 쓰린 탓이다. 아무튼)

이 시간이 귀해서... 

광고 아이디어를 내보려는 생각을 접는다. 

광고가 아직 내 밥벌이이긴 하고, 

며칠 앞으로 다가온 피치도 준비해야 하지만

귀하게 주어진 새벽 시간까지 헌납할 만큼 고귀한 일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을까 생각해본다. 

새벽 3시에 일어나진 김에 책이나 읽을까?

최근 일 년은 어찌된 연유인지 과학에 관련된 책만 읽고 있다. 

사고 빌리고 한 과학책만 열 권이 넘는데, 

한정식에 나온 반찬들을 한 젓가락씩 건드리듯 

내키는 책들을 펼쳐보는 식이라 책갈피가 모자랄 지경이다. 

하긴 일반상대성이론이나 양자물리학이나 진화론, 

인공지능의 역사를 다룬 오백에서 천 페이지 되는 책들을 순서대로 읽다가는

한 권도 끝마치지 못하고 종말을 맞을지 모른다. 

우연찮게 시작된 병렬독서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저것 배워보지만 어떤 것에도 전문가가 되지 못하고 죽는 것과 같을지도.

(흠... 서비스만두 같은 이 새벽 시간에 '나 요즘 과학책 읽어요' 자랑하고 있다) 

집 곳곳에 널부러진 과학책 중에 한 권을 들었다 놓는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 것이 베스트일까 싶어진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이어 읽는다면 나쁘지 않은 것 같기는 하지만...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해볼까? 

궁리를 하면서 어제부터 넘치기 시작한 세탁물 바구니를 뒤적여 흰빨래를 모아 돌린다. 

이 새벽엔 무엇을 하는 것이 멋질까? 

궁리를 하면서 찜질팩을 렌지에 돌려 아내의 이불 밑에 찔러 넣어준다. 

내가 일어나는 바람에 잠깐 잠을 깬 아내가 춥다고 했었다. 

홍신자인가 그런 분의 책 안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새벽 3시는 신의 시간이고 그 시간에 명상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었다. 

스님들 일어나는 시간도 3시라고 한 것 같은데... 

명상을 해볼까? 

서비스만두처럼 신의 시간이 주어졌지 않은가? 

명상 대용으로 몸을 구석구석 만저준다. 

언제부턴가 몸에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의 소중함을 손끝으로 느끼는 것이 건강과 구원의 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생겼다. 

그래서 가끔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온몸을 구석구석 어루만진다. 

머리를 손으로 정성스레 만지면서 

'내 뇌여, 오늘도 멋진 생각을 하자꾸나. 웬만하면 바른 생각을 하자꾸나'

눈을 만지면서 

'내 눈이여, 오늘도 세상을 따뜻하게 보자. 작고 초라한 것에도 눈길을 주자'

귀를 만지면서... 

뭐 이런 식으로 발끝까지 온몸을 훑어 나가는 것이다. 

스님 같은 몸-당부 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몸을 가졌고, 부분부분을 가졌고, 부분부분의 용도는 다 다르니까 말이다. 

요컨대 몸의 각 부분에 감사하고, 

각 부분이 최소한 용도대로, 

그 다음은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기능하기를 바라며 악수하고, 당부하는 것이다.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과학기술자가 자신의 기계와 도구들에 대해 가지는 바람 같은 느낌?

'몸 명상'을 끝내고 간만에 글을 써보기로 한다. 

최근의 몇 가지 이유와, 유서 깊은 게으름 탓에 발행까지 넘어간 적이 수 년간 없었는데, 

오늘 새벽엔 될 것 같았다.

될 것 같았고, 신의 시간 언저리여서인지 모든 게 용서될 것 같았다.  

글 좀 써보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용서받기 어렵게 느껴지는 게 막 써댄 글일텐데......

마침 기회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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