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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Apr 30. 2022

#13. 송구합니다.

'송구하다'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일하다 보면 가끔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순전히 내 잘못은 아니고, 나 또한 노력했다는 것을 상대방도 알고 있지만

잘못된 결과를 받아 들고 누군가에게 원망이나 하소연을 하고 싶지만, 차마 내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


그럴 때 난 주로 '송구합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게 되던 결과를 받아들이는 순간이 있다.

받아든 결과가 좋았다면

당연히 우린 그 일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공로를 인정해주길 바란다. 말로만 하는 보상이 아닌 급여 인상이나 인센티브 같이 실질적으로 내게 이득이 되는 그런 것들을 말이다.

반대로 일의 결과가 좋지 못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 나 또한 일말의 책임 또는 과오가 있을 수 있다.

직책에 따라, 일에 투입된 업무량에 따라 상대(회사)는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경우도 있고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결과는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결과가 좋든 좋지 못하든 내게 떨어지는 이득이나 책임은 없다.

다만 어떤 결과를 받아 들고

어떤 이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내게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는 '송구합니다'라는 표현이었다.


'송구합니다'라는 표현 뒤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저 또한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되어 매우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 아시다시피 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 그런 결과를 받으시게 하여 저도 매우 죄송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 하소연하실 데가 필요하시면 제게 하셔도 괜찮습니다.

- 언제나 그렇듯 좋은 성과란 누구 한 명의 노력만으론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번에도 제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번에 실패한 부분을 보완하여 다시 한번 시도해보겠습니다.

- 대신 함께 도와주셔야 합니다.


보통 내가 먼저 그런 표현을 사용하면, 상대는 내 노력과 공로를 인정해준다.

누군가만을 탓할 수 없는 그런 상황과 결과 속에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위안을 받는 것이다.

미안하다란 표현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너무 가벼운 표현인 듯하고,

죄송하다란 표현은 내 잘못이 너무 많은 것 같고,

송구하다란 표현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내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는 가장 적절한 단어인 듯했다.


우린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고,

또 누군가의 말에 위로받기도 하고 공감하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간다.

어떤 결과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누군가의 고과를 인정해주고 또 어떤 이의 참담한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는 건 어떤 일을 하든 우리에게 필요하다.

특히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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