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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May 24. 2022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정말 오랜만에 쓰는 책 리뷰.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과 마주 앉아 있어요.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그 사람 이야기를 듣는데... 어쩜 그리 말을 잘하고, 그 이야기들이 마치 내 얘기와 같은지.. 커피가 식은 줄도 모르고 그 사람이 하는 말에 빨려 들어가요.  

때론 말을 끊고 중간중간 적기도 하고, 밑줄도 그어가며 그 사람 생각을 훔쳐가기도 해요. 

그렇게 그 사람 이야기가 끝나고, 혼자 메모를 보며 생각을 정리해봐요. 


이 책과의 만남이 그랬어요. 

가끔 누군가와 대화가 필요하거나 마음이 헛헛할 때 에세이를 찾아 읽는 편인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어요. 

복잡한 생각을 정돈된 단어로 표현한 글을 보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거든요. 

저자와의 대화가 실패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책은 저자의 생각과 글에 참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사랑이다. 

나는 키우지 않는 것도 사랑이라고 믿는다. 함부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랑이라고 믿는다. 
사랑을 참아내는 것도 때로 사랑보다 더 좋은 사랑일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랑에는 준비도 필요하고 여건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내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태도, 상대와 소통할 수 있을 만큼의 지식도 필요하다. 연애와 달리 결혼은 실전이라서 연습이 없지 않은가. 
사랑이 꼭 곁에 두는 것, 소유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리워하는 것, 
마음을 분명히 하는 것도 사랑이다.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_p31~32>
삶에 응답하는 중 
모든 인생은 와중이나 도중이나 진행 중에 있다. 그 삶이 끝나면 더 이상 중을 쓸 수 없다. 
죽음에는 중을 붙일 수가 없다. 입원 중, 수술 중, 회복 중의 반대는 사망이나 영면이지, 사망 중이거나 영면 중은 없다. 그래서 살아서 하는 모든 행위는 '중'이다. 그게 너무 당연해서 중을 생략한다. 
나는 지금 어떤 도중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와중인가? 인생이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모아놓은 것이다. 길거나 짧게 하는 일이 있고, 느긋하게 하거나 서둘러하는 일이 있다. 싫어도 어쩔 수없이 하는 일이 있고, 좋아서 밥 먹는 것도 잊고 하는 일도 있다. 어쨌거나 인생은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이므로 그 모든 일이 '살아있는' 와중에 벌어지는 사건들일 테다. 삶 중에 당신을 만나서 사랑하는 중이고, 당신과 무언가를 먹는 중이다. 밥값을 벌어야 해서 일하는 중이고, 이왕 하는 일이라서 잘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고, 애쓰다 보니 재미도 있어서 아직도 하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어쨌거나 그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과 결혼하고, 현재 누군가는 같이 사는 중이고, 누군가는 헤어지는 중이다. 누군가는 아직도 혼자 사는 중이고, 누군가는 막 새로 시작하는 중이다. 어떤 중이건 그 '중'들이 보태지고 모아져서 '살아가는 중'이 되므로 우리는 그중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약간의 상투적인 교훈을 얻으면 된다. 우리는 각자 열심히 자신의 삶에 응답하는 중이다.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_p48~49>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만의 언어 몇 개를 얻어 사랑하고 가꾼다. 유독 끌리는 말들을 자주 쓰게 된다. 길들인 그 말들이 나의 생각이 되고 나의 마음이 되어 나를 나로 살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말이 내게 와서 가장 소중한 말이 되고, 가장 나중까지 필요한 말이 된다. 
당신이 타인에게 보여준 언어가 되돌아와 당신이 된다. 당신이 별을 보여줬기 때문에 우주가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당신이 먼저 와 있었기 때문에 기다리는 사람인 걸 나는 안다. 당신이 꽃을 들고 왔기 때문에 향기로운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안다. 당신이 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에 다정한 사람인 걸 나는 안다. 그렇게 당신이 내게 보여준 말의 색체가 어느새 나의 빛깔이 되었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겠다.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_p114>
잘 쓴 글과 좋은 글 
진심은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읽힌다. 자신이 아끼는 것. 누군가에게 요긴한 것을 내놓을 때 사람들은 반응한다. 그것이 꼭 필요한 무언가가 아닐지라도 시간과 정성이 투여된 것임을 아는 순간 사람들은 그것을 가치 있다고 여긴다. 그런 가치나 의미가 읽힐 때 독자들은 '좋은 글'이란 말로 뭉뚱그려서 인정한다. 
좋은 글의 힘은 본문에서 나온다. 본민이 진짜 실력이다. 본문은 테크닉의 영역이 아니라 삶 자체다. 
삶의 내용이 없으면 본문은 채워지지 않는다. 
소중한 걸 내놓아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 내놓을 게 마땅치 않다면 내놓을 만해 질 때까지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 결국 내놓는 그것은 글이 아니라, 내가 준비하고 가꿔온 인생 하나인 것이다. 
그 인생의 경과를 진정성이라 하고, 진정성은 자성이 있어서 사람을 끌어당긴다.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_p123~124>


책 제목처럼 저자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은 몇 개의 문장을 써봤어요. 

하나의 관통하는 주제가 아닌 살아가다 겪는 인간관계, 마음 정리, 사랑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다 느끼는 단상을 적었기에 딱 한 가지 주제를 들어 말하기 어렵지만 그냥 읽다 보면 생각이 많은 친구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알고 싶은, 그리고 읽고 싶은 작가가 또 한 명 생겨서 좋네요. 

가끔.. 이렇게 책 소개도 소소하게 해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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