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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an 16. 2023

일월이 반이나 지났다

새 다이어리를 마련해 두고, 아직 한 글자도 적지 못했다. 첫 장에 '한 해를 마무리하며'가 있는데, 2022년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월 하고도 보름 만에 적어보는 <2022, 올해의 oo>


올해의 변화: 어린이집

2022 가장 큰 변화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래 적을 모든 것은 '어린이집 등원'이라는 대전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작 내가 학생 때는 몰랐는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 스승의 날의 참의미를 깨달았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무엇보다 아이가 어린이집과 선생님, 친구들을 좋아하고, 덕분에 나는 9 to 4 자유시간을 얻었다. 야호.


올해의 단어: 자기계발

올해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자기계발의 해'라고 쓰겠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 끝난 3월 말부터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배웠다. 이런저런 수업을 찾아 듣고 공부하고 시험 보고 운동하고 자격증 따고 열심히 일하며, 아주 행복했다.

'what i did' list

- 공부: 1인 출판 클래스 / 평생학습 강사 학교 / 독서지도사 양성 과정 /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시험 / 화상 영어

- 운동: 필라테스 / 서핑 캠프

- 원데이 클래스: mwm 마블링 플레이트 / 앙금 쿠키 / 포셀아츠  


올해의 취미: 필라테스

드디어 발을 들였다, 필라테스의 세계에. 여러 수업을 들으며 내게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났고, 재등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https://brunch.co.kr/@vvmomovv/115


올해의 도전: 혼자서 해외여행, 브런치북 공모, 준학예사 시험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긴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도 남편도 없이, 무려 발리에! 내게는 올해 가장 큰 도전이었다. 여행이 즐거웠던 것은 물론이고, ‘이게 가능할까?’ 싶었던 일에 ‘응 뭐든 가능해’라는 답을 얻은 기분이다.

브런치북 공모와 준학예사 시험은 작년부터 숙제처럼 마음에 남아 있었는데, 올해는 둘 다 클리어했다. 결과는 뒤에 계속...!

https://brunch.co.kr/brunchbook/balimom


올해의 성공: 편집장, 준학예사 시험 합격

아이를 임신하고 회사를 그만둔 후로 나의 신분은 프리랜서(반백수)였다. 2019년부터 꾸준하게 함께 작업하던 출판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해주었다. 아이가 생겼을 때 누구보다 축하해주고, 육아 선배로서 굵직한 팁을 아낌없이 공유해주었던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되어 기뻤다. 무엇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내게 돈만큼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주어, 근무 형태와 시간의 제한이 없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아서 그 점이 더 기쁘다. 반년 정도 일한 소감은 다음에 계속.

준학예사 시험의 정식 명칭은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시험’. 소장품을 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학예사가 되기 위한 자격시험이다. 사실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미술도 좋아하고 전시도 좋아하고 미술 잡지에서 일해본 경험도 있고 궁금하기도 하여 작년에 외국어 시험 성적을 만들어 두었는데, 점수가 올해까지만 유효하다고 하여 봤다. 짙어진 다크서클과 바꾼 합격. 소리 질러.


올해의 실패: <아무튼, 드럼> 투고, 브런치북 공모 탈락

올해의 실패는 모두 글쓰기에 관한 실패다. 초심을 다지고자 1인 출판 클래스를 수강했다. 기획부터 글쓰기, 디자인, 실제 출간까지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그중 가장 어려웠던 것이 ‘쓰는 일’이었다. 글의 곁에서 일하며 언젠가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데에 한 번도 의심을 가져본 적 없지만, 내 글을 쓰는 것은 늘 어렵고 어렵고 어렵다. 실패하면 너무 타격이 클 것 같아 개인적인 글을 누구에게 보여준 적도 없고 피드백을 받아본 경험은 더더욱 없었기에 꺼내놓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몽땅 실패하니 오히려 시원하다.


1인 출판 클래스 과제로 ‘취미’에 대해 원고지 30매 분량의 글을 써야 했는데, 주제를 정하다 수업의 대부분을 썼다. 겨우 드럼에 관한 글을 쓰고, 아무튼 시리즈에 투고해보라는 선생님의 권유에 용기 내어 투고했다가 광탈했다. 친절한 편집자님께서 드럼은 이미 계약이 되어 다른 작가님이 집필을 하고 계신다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빠른 단념과 함께, 앞으로는 매일 같이 메일함으로 들어오는 투고 메일에 빠르고 다정하게 답을 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https://brunch.co.kr/@vvmomovv/109    


나만의 숙제처럼 느껴지던 브런치북 공모도 마감 30분 정도를 남겨두고 겨우 제출했는데, 역시나 탈락. 선정된 글들을 보니 신경질 나게 재미있다. 우선은 재미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투고든 공모든 생각만 하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편집자 입장에서 작가님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이제 닦달하지 않을게요), 내 글을 용기 있게 뱉어내는 시작이 되었다는 점에서 달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꾸준히, 계속, 오래 쓰는 사람이 되어야지.


올해의 책: <숲 속의 자본주의자>

'네가 좋아할 것 같아'라고 추천받은 책이 진짜 좋을 때, 조금 벅차다. 그런 느낌이 들었던 책. 다음 주 독서 모임에 이 책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모임 후에 자세히 적어봐야지.  


올해의 음식: 짜장면

중국집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작업하면서, 중국집에 얼마나 드나들었는지 모른다. 남편과 아이가 잠든 시간에 혼자 원고를 읽다가 다짐하는 것이다.

‘내일 점심은 꼭 짜장면 먹어야지.’

“탕수육은 원래 무침요리다. 튀긴 고기를 당초즙에다가 묻혀 내는 빤차이야.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그게 가정부지 요리사냐?”

양파향과 춘장향이 오르는 짜장면을 비벼서 후루룩, 소리가 나게 한 입 먹었다. 면에 착 달라붙은 고기와 채소가 후루룩 목구멍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잘게 갈린 고기에서 빠져나온 풍부한 기름맛, 느끼한 게 아니라 따뜻하고 고소한 기름맛이 가슴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제일 맛있는 짜장면은 두말할 것도 없이 홀에서 금방 나온 것. 그 온기를 위해 위광은 잡지도 못할 만큼 뜨거운 그릇을 직원의 손에 들려 보낸다.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중식의 매력에 빠졌다. 메뉴판 읽는 재미가 쏠쏠하고 가끔은 재료를 상상하며 용기 내어 새로운 메뉴를 먹어보기도 한다. 하나의 세계가 열린 기분이다. 여전히 중국집 메뉴는 낯설고(이름도 무시무시하다, ex.해삼주스) 짜장면에 탕수육이 최고의 조합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고로 중식은 뜨겁게 먹어야 한다는 것과 탕수육은 본래 무침요리라는 것에 대해 알았다.

한동안은 누굴 만나든 중국집에 갔다. 메뉴판을 앞에 두고 신나서 떠드는 나를 보고 친구가 "너는 덕업일치가 제대로 됐구나" 했다. 그런 것도 같다. 새로운 책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면 그것으로 된 거라는 생각을 한다. 많이 읽혔으면 좋겠는데, 또 그게 마음 같지는 않다(=잘 안 팔렸다).

단골 중국집도 생겼다. 날이 덥든 춥든 식전에 따뜻한 차를 내고 따뜻한 그릇에 짜장면을 담아주는 곳이다. 탕수육은 묻지도 않고 소스를 부어준다. 오랜 찍먹파지만 군말 없이 먹는다. 쓰다 보니 또 먹고 싶다. 내일 점심엔 짜장면 먹으러 가야지.  


올해의 대화: 아들과의 대화

2022년 6월 1일, 22개월 아들이 처음으로 문장으로 말했다. 첫 문장은 "아빠, 너무 맛있어요"

평소에 안 주던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꺼내주고 마음껏 먹으라고 했더니 황홀한 표정으로 저렇게 말했다. 그날 이후 폭발적으로 말이 늘어 이제는 남편보다 대화가 잘된다.

아이와의 대화는 뭉클하고 경이롭다.

"엄마 어디 갔었어,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엄마 사랑해, 많이 많이."
"괴물아 잡아먹지 마,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엄만데."
"엄마 잘 잤어? 굿모닝~~ 기분이 어때?"
"엄마 내가 핸드폰 하지 말라고 했지? 했잖아 방금. 다음부턴 그러지마?"

"엄마가 꽉 안아서 마스크 이케 됐자나."
"그랬어? 미안해~"
"괜찮아 엄마, 다시 내리면 돼"

아직 태어난 지 3년도 안 된 쪼끄만 인간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사랑한다고 할 때,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떨어트려 깨졌는데 두 남자가 달려와서는 하나는 떨어진 유리를 치우고 하나는 "엄마 이리 와, 왜 그랬어? 실수야? 괜찮아, 이리 와 내가 안아줄게" 할 때, 내가 이렇게 큰 사랑을 잔뜩 받아도 되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올해의 행복: 여행

1월 평창을 시작으로 대전, 칠곡, 춘천, 가평, 인천, 인제, 광주, 제주, 강릉, 삼척, 부산 등 국내 여행을 틈틈이 다녔다. 우리 셋이서도 가고, 친구네 부부와도 가고, 온 가족이 모여서 가기도 하고, 짧으면 하루, 길면 2박 3일 동안 아이와 함께 여행한 것이 올해의 큰 행복이었다.


2023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불화로 시작한 2022년이 화해와 행복으로 마무리되기까지 노력한 모두와, 균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스스로와, 옆에서 묵묵하게 응원하고 지지하는 남편과, 우리의 동력이자 행복이 되어준 아이에게 감사하며 새해 계획을 세워 봐야겠다(계획하다 한 달 다 간다 XD). 부디 해피 뉴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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