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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Dec 13. 2023

혹시, 또 생각만 하고 계세요?

생각하다 12월을 맞이한 나에게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 나도 생각을 한다. 생각할수록 거창해지는 계획을 열심히 생각하다가 아 안 될 것 같은데, 아 타깃이 모호한데, 아 벌써 누가 하고 있는데, 하고 생각한다. 그러는 사이 솟구치던 에너지는 시들해지고 만다.

이쯤 되면 내가 하려고 생각을 하는 건지, 안 하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비슷한 결과물이 세상에 나오면 속으로 또 생각한다. 아 내가 하려고 했던 건데. 그놈의 생각의 굴레에 빠져 서른다섯이 되어서도 내 존재감은 이렇게나 미미하다.


정정해야겠다.

생각했으면 뭐라도 한다, 그래야 존재한다.


처음 이런 생각을 했을 땐, 머리에 커다란 느낌표가 쾅하고 새겨졌다. 그렇지, 생각만 하면 뭐 해. 뭐라도 해야지. 그래, 뭐라도 하자.

하지만 깨달음은 또 깨달음일 뿐이다. '뭐라도 하기'의 그 '뭐'를 정하다가 또 시간이 흐른다. 에너지도 흐르고 결국 생각하기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무리 해맑던 인간도 조금씩 삐뚤어지기 시작한다.


'그걸 누가 몰라? 몰라서 못하는 거 같아???'


그런 식으로 몇 년이 지나면, 뛰어난 학생이 될 수 있었던 아이는 진도 따라가기에 급급한 학생이 되어버리고 만다. 억대 연봉을 받는 중역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매번 승진에서 미끄러지는 초라한 직장인이 된다. 당신이 정말 원했던 업무는 성장을 위해서라면 힘든 일도 기꺼이 하는 사람의 몫으로 돌아간다. 결국 당신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힘든 일을 먼저 하라> 중에서


한껏 삐뚤어진 이후 자기 계발서를 멀리하는데, 요 며칠 알고리즘이 나를 몇 권의 책으로 연결했다. AI마저 각성하라 독려하는, 바야흐로 연말이다.

평소대로라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오는 동기부여 콘텐츠를 보고 마음을 다잡은 뒤, 고심해 다이어리를 장만하고 남편의 비웃음을 무시하며 올해 목표에 (또) '글쓰기'를 적었어야 했다.

그래, 평소대로라면 '일을 미루는 것은 당신이 완벽주의 성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답니다' 같은 달콤한 문장에 밑줄 그으며 신년운세의 좋은 말을 골라 다이어리 한 구석에 필사하는 멍청이짓을 했어야 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브런치에 들어와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제목란에 큰 글씨로 이렇게 썼다. '일단 뭐라도 써'


1인 기업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 2~3년 동안은,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몇 주가 후딱 지나가곤 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내가 일에 지나치게 부담을 느낀 나머지, 해야 할 일을 번번이 미뤄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곧 깨달았다. 아주 하찮은 일일지라도 일단 뭔가를 하고 나면, 어려운 일이 금세 쉬워 보인다는 사실을. 가령, 홈페이지 전체를 새로 디자인할 일이 생기면, 난 이렇게 말했다. "좋아, 일단 당장 홈페이지 이름부터 손보자." 그런데 홈페이지 이름을 손보고 나면, 난 어느새 다른 부분을 손보고 있었다. 이걸 알기 전에는 사업 계획처럼 큰일에만 몰두했었다.

<신경 끄기의 기술> 중에서


요상하게도 나는 늘 스스로를 유망주라고 생각했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실제로 잘하는 게 있을 수도, 전혀 없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게 뭔지 나는 모른다는 거다. 행동하지 않았으니 결과가 없고, 결과가 없으니 제대로 평가할 수도 없었다. 잘할 '수도' 있다고 추측할 뿐이다. 모호함은 불안을 야기한다고 하던데, 그래서인가 늘 스스로를 의심하는 어른이 되었다.  

한두 해가 더 지나면, 나는 이제 청년희망적금 같은 건 신청할 수도 없는 어엿한 장년이 된다. (자칭) 유망주라기엔 조금 부끄러울 나이다. 그러니 이번엔 계획이나 목표에 힘 빼지 말고 생각나는 건 그냥 해볼 생각이다. 우선은 이 글을 발행해 보는 것부터, 여기서부터 출발하자고. 부릉부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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