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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Feb 16. 2021

프리랜서가 된 이유

회사를 다닐 땐 언제나, 늘, 틈틈이 생각했다. 이눔의 회사 당장 때려치우고 프리랜서 하고 싶다. 출퇴근만 없어도 능률이 오백 배는 오를 거야.

특정한 회사가 문제가 아니라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회사가 다 그랬다. 내게는 그게 내일부터 다이어트할 거야. 와 비슷한 의미였다.

하지만 막상 프리랜서가 된 건, 드디어 꿈을 이뤘다기보다는 현실에 떠밀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세 번째에서 네 번째 회사로의 이직을 준비하던 차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조직 개편으로 팀이 두 번이나 바뀌었고, 그 와중에 인간에 대한 오만 정이 떨어졌으며, 새로 부임한 대표는 숫자로 줄을 세워 조직을 가늠하는 중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리기는커녕 어수선한 분위기에 우왕좌왕하던 어느 날, 대표와의 개인 면담이 있었다. 분위기를 파악하려는 건지 개인적으로 식사를 하면서 이것저것 묻는 대표와의 대화 끝에 결혼한 지 얼마나 됐어? 남편은 뭐하고? 2세 계획은 없고?’라는 최악의 3단 콤보 질문을 들었다. 나는 배운 여자답게 사적인 질문은 반사입니닷하며 답했어야 했는데 그냥 어설프게 웃으며 대충 대답해주고 말았다. 그중 ‘2세 계획은 없고?’, , , 아직정도로 얼버무렸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3만 부 짜리 한 권 만들고 가지면 되지 하하허허허하는 소리가 돌아왔다. 그 자리에서 퇴사를 결심했다.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치열하게 실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조직에서 임신한 직원은 불편한 존재다.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임신한 상태로 이직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회사에 남아서 눈치보기도 싫어서 프리랜서가 됐다. 사실 프리랜서는 ‘됐다’고 하기도 뭐하다. 일이 있으면 프리랜서가 된 거고, 일이 없으면 백수인 거니까.

다행히 약속된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고, 그걸 핑계 삼아 그냥 나는 프리랜서가 된 셈 치기로 했다. 그래야 정신 건강에도 태교에도 좋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버텨서 출산 휴가를 받고 육아 휴직을 내는 것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대로 퇴사하는 것과 어떻게든 버티는 것.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최소 2천만 원 정도가 손해였다. 당연히 (많이) 아까웠지만, 여름이를 품고 보낼 몇 달도 내게는 다시없을 시간이니 되도록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남편에게 미안했다. 임신한 아내에게 내색하지 못했겠지만 내심 아깝고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의 계획과 프리랜서 출산지원금 같은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퇴사를 하고 지금 얼마나 행복한 지도.



지금 와 생각해보면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코로나 시국과 맞물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친정집에 내려가 엄마아빠와 여유로운 한 달을 보냈고, 이렇게 행복할 수 있나 싶을 만큼 행복한 임신 기간을 보냈다. 덕분에 나도 여름이도 내내 건강했고 여름이가 나오기 일주일 전까지 좋은 사람들과 재미있는 프로젝트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나고 생각해보니 조금 말랑하게 생각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임신한 직원은 불편한 존재’라는 건 그냥 제 발 저린 당사자의 생각일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당연히 눈치도 보이고 의식도 되었겠지만, 그것 역시 잠깐이고 지나고 나면 그 또한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했을지도.



아무튼, 나는 그렇게 프리랜서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첫째, 상황에 매몰되어 너무 빡빡하게 생각하지 말자.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둘째, 어디서 누구와 일하든 ‘자존감을 지키며 일하는 것’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자. 자존심 아니고 자존감. 돈은 언제나 중요한 기준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더 중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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