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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윤 Jun 17. 2020

산뜻하게 배짱 부리기

일하는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태도

최근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어제로 두 달을 채우고 오늘부로 3개월차에 돌입했다. 기꺼이 <여자들의 커리어 성장 플랫폼>이 되고자 하는 회사이고, 그 비전에 공감하는 이들이 선릉에 모여 일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오늘 저녁 식사를 하다가 "일하는 여자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요? 고민이예요. 정말 해 주고 싶거든요!"라는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누군가 여자들이 일할 때 더 나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또 누군가 "그럼 나댄다는 것은 뭘까요?"하고 물었다. 나는 "우선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거요. 자꾸 노출하고 표현하는 것이요"라고 대답했다. "왜 여자들은 일할 때 스스로나 자신의 능력 또는 성과를 마구 드러내지 않을까?"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에 바로 답하기가 어려워서, 명제의 대우를 꺼내듯이 "일할 때 나대는 (그러니까 스스로나 자신의 능력 또는 성과를 마구 드러내는) 남자들의 경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하고 주변의 사례를 떠올려 보았다.


우선 그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스스로 내가 쥐뿔이라도 있는지 없는지 검열하는데 크게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 그저 이 기회가 얼마나 커다란지, 그리고 나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인지에 집중했다. 그렇기 때문에 선뜻 기회를 잡았다. 잡은 기회 속에서 내놓은 결과물에 대해 욕을 먹어도 술 한 잔(※ 개인의 주량에 따라 병단위일 수도 있음)에 털어내고 다음날을 살았다. 욕 먹은 어제에 머물지 않고, 기회를 잡은 뒤 결과물을 내놓은 사람으로서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았다. 사람을 대할 때도 그랬다. 형들에게 전화해서 약속을 잡을 때도 망설이지 않고 전화부터 걸었다. "형 어디야? 술 먹자!"하고 대뜸 불러 낸다. 바쁜 형은 어디 감히 형 바쁜데 갑자기 전화해서 오라 가라 하냐며 타박을 주고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한 시간 뒤에 전화를 건다. "형~ 이제는 안 바빠? 나와~ 술 사줘~" 그러면 진짜 그들은 만나게 되고 술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우정을 쌓고 나중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서로 기꺼이 챙겨주는 사이가 된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깨달았다. 가져야 할 것은 배짱이구나. 그리고 관건은 산뜻함이구나.


욕을 먹거나 질타를 피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의 태도가 극명하게 갈렸다. 저녁을 함께 먹고 있는 세 사람만 해도, 내가 어떤 일을 맡았고 해냈는데 결과가 엉망이라 욕을 먹는 상황을 떠올렸을 때 무섭다고 답했다. 하지만 우리가 떠올린 주변의 나대는(좋은 뜻이다) 남자들은 어떤가? 똑같은 가정 앞에서 우리가 "안돼"라고 말할 때, 그들은 "뭐 어때"라고 말했다. "욕 먹으면 안돼. 못하면 안돼. 폐 끼치면 안돼"가 아니라 "욕 먹으면 뭐 어때. 못하면 뭐 어때. 폐 끼치면 뭐 어때"처럼 말이다.


"뭐 어때?"라는 말은 배짱을 두둑하게 만드는 주문일 뿐 아니라 산뜻한 태도를 유지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안돼"라는 말이 지금을 딛고 있는 발바닥을 찐득하게 만들어서 도무지 실수나 실패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면, "뭐 어때"라는 말은 엄청난 고성능의 베이비 파우더 같아서 찐득해질 뻔한 발바닥을 금세 뽀송뽀송하게 만들어 준다. 덕분에 보다 가볍게 다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일하는 여자들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나부터 일하는 상황에서 너무 쉽게 주눅이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는 나의 결과물이 서툴고 부족하고 모자라기 때문에 혼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법의 주문 "뭐 어때?"를 장착한다면? 나 또는 나의 결과물이 서툴고 부족하고 모자라면 뭐 어떤가? 일단 나는 기회를 잡았고 쥐뿔정도밖에 안 되어도 무언가 해냈고 그것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것이고 다음에는 그걸 반영해서 조금 더 (많이도 필요 없다) 잘하면 그만이다. 저녁을 다 먹었을 무렵 상사로부터 콜이 왔다. 서툴고 부족하고 모자란 나의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이었다. 강점 1위가 적응인 나는, 식사를 다 했을 무렵부터 벌써 "뭐 어때?"의 주문을 장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사무실로 복귀해서 상사를 만나 피드백을 받았을 때도 이전에 느꼈던 타격감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혼난 것이 아니라 배웠기 때문이다. 산뜻하게 부리는 배짱의 짜릿함을 앞으로 더 많이 맛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배짱을 좀 부려도 된다. 일을 할 때 산뜻하게 마음 먹어도 된다. 욕 좀 먹어도 된다. 내가 가진 것에 비해 커다란 기회가 오더라도 뒷일 생각 안하고 잡아채도 된다. 까불고 나대도 된다. 나의 기준에서 100%를 만족하지 못한 결과물이라도 내놔도 된다. 그래도 된다고 나와 당신에게 말해 주고 싶다. 이 말 막연한 괜찮다는 말보다 더 힘이 있다. 그러면 정말 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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