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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22. 2024

두 세계의 접점에 서는 일

누구를 위하여 여기 서 있나


출장 차 방문한 고향에서 엄마를 만나고 왔다. 엄마를 만나는 일에는 각오와 준비가 필요하다. 블로그 체험단으로 숙소를 잡고, 저녁밥을 먹을 식당과 다음날 점심을 먹을 식당, 카페까지 예약을 했다. 엄마와 함께 이런 것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돈이 안 드는 것이어야만 한다. 돈이 드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억지로 하게 해도 누릴 줄을 모르는 사람이 바로 나의 엄마다.


예쁜 숙소는 아쉽게도 선정이 되지 않았고, 리모델링했다고는 하나 약간은 허름해 보이는 호텔(이라 쓰고 모텔이라 읽는) 숙소에 선정되었다. 그래도 쓰레기가 가득한 친정 집에 비하면 번쩍번쩍 호텔이 맞다. 게다가 무료라니. 엄마는 충분히 만족해하셨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가는 길, 엄마는 이 동네에 오랜만에 온다며 반가워했다. 여전히 오래된 간판들을 보며 감회로운 듯했다.


그곳은 내가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자주 따라다니던 이모 집에 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다음날 이모를 만났다. 이모도 그 전날 예전 우리가 살던 집을 지나면서 엄마를 생각했다고 한다. 내 결혼식 이후로 두 분이 처음 만났다고 하니, 십 년 만에 만남이 성사되었다. 겨우 이곳에 위치한 숙소로 인해. 이 좁은 지역에서 두 분이 만나는 게 뭐 그리 어려웠을까. 맞다. 나의 엄마는 친구를 만나는 일도 사치라고 여겼지. 그래도 드문드문 전화로 안부를 물어왔던지, 갑작스러운 엄마의 전화에도 이모는 한달음에 달려 나와주었다.


클래식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엄마는 시종 웃고 있었다. 그리고 주문한 디저트는 혼자서 부지런히 다 드셨다. 내가 사는 거였다면 됐어, 안 먹어. 하거나 결국 시켜도 이거 얼마야? 놀라고 눈치 보며 맛있게 먹을 일이 없는 엄마는, 무료라는 이유로 부담 없이 편안하게 티타임을 즐겼다. 그리고 이모에게 은근슬쩍 자랑을 했다. 우리 조이는 글을 잘 써서 이런 것들을 공짜로 먹고 다닌다며.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눈치껏 그런 자랑을 받아주는 이모에게 감사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이모에게 넉살을 부리며 토로했다. 이모, 나는 결혼하고 밝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엄마는 여전히 어둠 속에 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쓰레기라도 치우고 살면 나을 텐데 엄마는 정말 왜 그럴까요. 우리는 장님처럼 코끼리 다리만 만지고 살았는데 저는 코도 만져봤어요. 코가 손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 신기한 것을 엄마도 봤으면 좋겠는데, 같이 손뼉 치며 깔깔 웃고도 싶은데... 대강 이런 말을 했다.


이모는 그 모든 것들은 천국에 가서 하라고 말했다. 이모의 어투를 보아 엄마는 안 바뀔 테니 포기하란 말이 아니라, 엄마를 바꾸려 들지 말란 말이었다. 자식인 내가 부모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걸, 그래서도 안 된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나는 그저 엄마와의 접점을 만들고 싶었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잘못된 방식을 고수하는 엄마의 삶과 교집합을 이루지 못하는 게 마음이 아팠다. 나는 더 이상 엄마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간밤에 엄마와 호텔로브를 입고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두 세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날 이모에게 했던 말들은 이 대화의 연장선에 있었다. 두 세계에 대해 듣고 있던 엄마는 내가 처음 듣는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꿈이라고 했다. 그것은 나를 시집보내기 전에 꿨던 꿈이었다.


시골에 살아본 적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의 풍경을. 그 칠흑 같은 어둠 속, 엄마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걸어 나오는 나를 보았다고 했다. 그 화장실은 내가 태어나고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살았던 집의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나는 그 집의 화장실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밤에는 단 한 번도 혼자서 간 적이 없다. 그래서 요강을 사용했던 기억까지 생생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80년대 끝자락에 태어났다. 내가 나고 자랐던 곳은 지방 소도시였고 밤풍경이 칠흑 같던 깡시골은 아니었다. 시대적, 지역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푸세식 화장실이 딸린 집에 살았다는 건 상대적으로 상당히 가난했다는 말이다.


이후에 이사 간 집은 화장실이 집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쁘게 입성했던 기억이 난다. 비록 살다 보니 엄마의 지독한 취미로 인해 바선생이 가득하고 마지막엔 마우스까지 드나들었지만.(정말이지 이 존재들은 입에 올리기도 싫다.) 그런데 엄마는 이사 다닌 집들 중 하필 그 집 화장실에서 내가 바지춤을 고치며 나오는 모습을 보았고, 볼일을 마친듯한 내가 이내 빛이 가득한 방으로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그 꿈을 꾸고 나서 내가 시집갔다는 말을 엄마는 이제야 내게 들려주었다. 


지금 시대에 결혼을 했다는 표현보다 굳이 시집을 갔다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말 그대로다. 결혼은 내게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비유하자면 눈앞에 자꾸 어른거려서 치워내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해서 덥석 잡고 보니 타잔처럼 다른 세계로 와 있게 된 사건. 그런데 그 세계에는 빛이 가득했고, 밭에는 쓰레기가 아닌 꽃과 열매로 가득했다. 똑같이 두 발을 딛고 서는 땅인데도 자연의 섭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었다. 같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돌밭과 가시떨기, 아니 쓰레기더미에 뿌린 씨앗은 자라나지 못했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세계에서 나는 헐벗은 타잔같이 어쩔 줄을 몰랐다. 그저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의 옛 습관은 버리고 남편과 발을 맞추어갔다. 쉐도잉 효과, 어느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부지런한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은 그 자체로 내겐 기회였다. 그러나 두 아이를 육아하며 바닥난 체력과 인내심 때문에 남편의 소중한 피드백은 잔소리로 전락해 버렸다. 더 이상 나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었다. 현실에 적응하는 것만도 버거웠다. 아무리 내가 동의했다 한들 어떤 면에서 남편은 지독하게 집요했고, 나는 내게서 엄마의 고집을 보았다. 실체도 없는 나만의 성을 끝끝내 지키려는 자기 방어적 태도로 일관했다. 남편에게 등을 돌리는 순간 나는 다시 나의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이미 떠나왔다고 생각했으나 어둡고 컴컴한 세계가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변화되고 싶은 갈망과 끝내 변하지 않는 내 모습 사이의 괴리가 있었다. 


남편도 남편만의 그림자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부분이며 전체를 덮지는 않는다. 밝은 거실에서 한쪽 전구가 나간 것과, 거실 전체가 어두컴컴한 것과는 다르다. 남편을 만난 이후 나의 세계는, 마치 오랜 시간 고장 난 등을 달고 살다가 LED 불빛으로 갈아 끼웠을 때의 현상과도 같았다. 나는 눈이 부셨지만 이내 적응했고, 이보다 어두운 공간에는 더 이상 머물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있는 공간의 빛은 엄마가 있는 곳까지 닿지 않았다. 내 마음에 아무리 빛을 가득 담아간들, 거대한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호롱불에 불과했다. 내 안에 있는 연료는 금세 바닥나곤 했. 내 세계의 빛은 딱 나의 내면만큼만 비출 수 있는 것이었다.




환경이 어떠했든 나는 부모의 그늘 아래 보호받고 자랐다. 부모가 있어도 기댈 수 없어 고아 같다고 느낀 적이 많았지만, 가족이라는 연약한 울타리 안에서도 나는 가장 좋은 양분을 받고 자랐다. 우리 가족 안에서는 그랬다. 이토록 연약한 내가, 한동안 우리 가족의 희망으로 반짝 빛나던 때가 있었다. 그 불빛마저 스러져갈 무렵 엄마는 나를 남편에게 데려다 놓은 셈이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남편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눈앞에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던 동아줄 같은 그것을, 내게 자꾸만 들이민 사람이 엄마였기 때문이다.


제목을 두 세계라고 썼지만 내게는 연결된 하나의 세계다. 연결되어 있으나 접점을 만드는 것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자식이 부모를 만나러 가는 것이 왜 자연스럽지 않은지 누가 묻는다면, 나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서'라고 말할 것이다. 엄마가 밉기도 했지만, 진짜로 미워서는 아니라고. 나는 엄마를 만나러 이토록 수고를 하는데 엄마는 아무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미웠다. 젊은 자식이 늙은 부모를 찾아가는 게 맞다. 그러나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엄마의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내내 나는 슬펐다. 엄마의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물리적인 이유부터 그러했다.  진정 내가 오기를, 사위와 손주들을 기다린 게 맞느냐고 묻다가, 일말의 기대와 희망마저 묻어버렸다. 여전히 버리지 않은 쓰레기와 변하지 않은 환경이 그것을 대신 말해주었다. 엄마는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쓰레기를 여기서 저기로 옮겨놓는 수준밖에 되질 못했다. 엄마와 함께 살아왔던 나는 그 노력을 알면서도 알아줄 수 없었다. 엄마의 노력을 알아주기 위해서는 나 혼자서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엄마와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가 뒤따랐다. 출장을 계획하고, 각오를 하고, 설득을 하고, 예약을 했다. 출장일정이 어그러질 뻔하고, 이 정도면 다 컸지 했던 아이들은 하룻밤도 엄마와 떨어져 있길 싫어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나는 엄마가 더 보고 싶어졌다. 나는 엄마와의 만남을 여행처럼 계획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어렵사리 엄마를 만나러 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깨끗한 모텔에서 불을 끄고 엄마와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엄마의 뭉툭하고 따뜻한 손을 잡았다. 나는 잠시나마 우리의 세계가 연결되었다고 느꼈다.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무엇이 보이니? 그 세계는 점점 더 확장되겠지만, 그 세계가 전부는 아니란다. 너는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 그러면 아마 다른 옷을 입은 기분일 거야. 헐벗은 몸에 걸치는 옷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네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야 할 수도 있어. 다시 입는다면 아주 색다른 느낌의 옷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 세계 속에서도 너는 분절되지 않은 채 여전히 너로서 존재하게 될 거야. 애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없어. 한동안 너는 살아왔던 곳과 다른 세계에서 애쓰며 지내야 할 거야. 어떤 부분은 평생 애쓰며 살기도 하겠지. 그러나 중요한 건 네가 그 세계에 존재하는 이유란다. 그것은 네가 그 세계에 있음으로 인해 네게 찾아온 변화야. 그러니 무엇이 변했는지,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해. 반드시 변해야 하는 것이 변하고,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변치 않는다면 너는 그 세계를 가진 거야. 이제 또 하나의 세계가 온전히 너의 소유가 되는 거란다.


그러나 네가 세계에 머물기 좋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쉽게 끌어들일 수는 없어. 누군가는 너만큼 혹은 너보다도 훨씬 애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 너의 세계로 초대한다고 하면서 그것을 강요해선 안 되는 거야. 네가 새로운 세계를 만났을 때 느꼈던 헐벗은 기분을 기억해 보렴. 강제로 옷을 벗게 할 수는 없는 거란다. 다만 너는 너의 세계를 충분히 누리며 살고, 그것을 들려줄 수 있어. 그리고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지. 코끼리가 코로 과자를 집어 먹는 모습을. 그리고 함께 그것을 보며 웃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꿈꾸겠지. 어쩌면 그런 순간은 평생 오지 않을 수도 있어.


두 세계의 접점에 서 있는 일은 분명 힘들 거야. 그러나 그 지점에 서서 노력한 만큼 너는 타인을 존중할 수 있을 거고, 결국엔 너를 존중하게 될 거야. 경험하 싶은 세계를 소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와 연결된 세계를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마. 그곳에도 네가 있기 때문이야. 많이 외롭고 힘들겠지만 그곳에 있던 너를, 그곳에 있는 사람을 기억하며 아주 가끔은 접점에 서 있어 주렴. 너와 닮은 누군가는 너를 보고 용기 낼 수도 있을 테니까.



* 사진 출처: Pixabay, Steward Maswen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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