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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14. 2024

야물지 못한 인간들


내가 아버지를 싫어한 건 내가 스스로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이유와 비슷하다. 나는 키가 큰 외모부터 시작해 아버지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키만 멀대같이 커 가지고."


아버지가 나를 나무랄 때 자주 했던 말이다. 키만 멀대같이 컸지 야물지 못한 나의 행동과 말투를 탐탁지 않아 하셨다. 그러면서 꼭 덧붙이셨다. 닮으란 건 안 닮고 꼭 닮지 말란 건 닮는다고. 아니 그게 내 탓이냐고요. 그리고 닮으라는 건 대체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이 이상 당신을 닮지 않고 싶진 않습니다만.


아버지는 아마도 자신의 못난 모습을 사랑하지 못했고, 내 모습에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를 나무랐던 것 같다. 그것은 나에 대한 걱정일 수도 있고, 자기에 대한 혐오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나를 수용하지 않는 정서였다. 나도 그런 나를 수용하지 못했고, 자신을 닮았다고 하니 그런 모습을 물려준 아버지도 미웠다.


무엇을 해도 어설픈 사람, 제대로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 모지리, 어리석은 사람, 무능한 사람, 무지렁이 같은 인간,..


이것은 내가 여전히 아버지에게 갖고 있는 인상이다. 아버지는 딸이 자신을 이런 인간으로 바라봐왔다는 사실을 알까. 써놓고 보니 왠지 죄송스럽지만, 나 자신 오랫동안 이렇게 바라봐왔다면 위로가 되려나. 아버지를 닮은 나는 스스로를 위와 같은 인간상으로 분류해 버렸다.


나는 아버지와 닮기를 거부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가정생활을 하며 수시로 내겐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내가 아버지를 보면서 느꼈던 답답함과 울화는 나를 향했다. 무력감을 느꼈다. 나는 왜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서 아버지를 닮았을까.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아버지의 흔적이 얼룩처럼 나의 DNA에 박혀있는 것만 같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ADHD가 아닐까, 의심도 해보았지만 무서워서 검사는 못 했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한 도무지 나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닮은 나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위해서라도 아버지를 받아들이려 한다. 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를 닮은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를 닮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나는 그를 닮았지만, 그와 같진 않다. 모르면서 아는 체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의 실수와 어리석음을 변명하거나 얼버무리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수고로 매듭지게 된 일에 대해 딴청 피우지 않는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감사를 표한다.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길치면서도 헤매는 게 싫어서 없는 형편에 택시만 타고 다녔던 아버지와 같지 않다. 장을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시장을 몇 바퀴나 돌고 돌았다. 두 손 가득 짐을 들었으면서도 버스비를 아끼려고 집까지 걸어오셨다. 같은 집에 살고 같은 형편을 공유하면서도, 아니 우리를 그따위 집에 처박아놓고서도, 혼자서 고고하게 차려입고 빠져나가듯 외출하고선 소득 없이 돌아와, 밥만 먹고 잠만 잤던 그와 같지 않다.


오늘도 나는 헤매지 않기 위해 네이버지도를 켜고 거리와 방향을 가늠한다. 가족과 함께 외식하기 위해 블로그 체험단 사이트를 뒤진다. 그리고 나를 닮은 아들의 잦은 실수를 용납한다. 아들이 스스로를 너무 미워하지 않길, 엄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엄마를 싫어하지 않길 바라면서.


오늘도 깜박하고 양치컵을 챙겨주지 못한 엄마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아들이 괜찮다고 말해줘서 다행이다. 아들아, 우리 야물게 태어나진 못했지만 함께 서로를 용납하고 노력해 보자. 함께 여물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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