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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13. 2024

소통이 안되면 고통이 온다

마음을 쓰는 일


"소통이 안되면 고통이 옵니다."


소통전문가라고 불리는 강연가 김창옥 님을 좋아한다. 청각장애를 안고 계셨던 아버지와 소통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아버지와, 그 아버지 곁의 어머니와, 그 속에서 성장한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청각장애 판정을 받은 건 아니지만 귀가 많이 어둡다. 그리고 목소리가 크다.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가족오락관 프로그램을 보며 아버지를 이해했다. 왜 그렇게 목소리가 큰 것인지. 자기 목소리를 자기가 듣기 위해서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 아버지와 대화하기가 점점 꺼려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버지에게서 더 큰 문제를 발견했다. 그건 바로 못 알아들었으면서 알아들은 체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대화를 못 들으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그럴 땐 다시 묻거나, 대충 눈치로 파악하는 법인데 안타깝게도 나의 아버지에겐 눈치마저 없었다.


대부분 어? 하고 되묻곤 하셨지만, 다시 설명하고 나면 대화의 흐름이 끊기거나 김이 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가끔 엷은 미소를 띤 채 고개만 끄덕일 때가 있었다. 그런 모습은 아버지가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엉뚱한 발언을 하는 순간 들통이 났다. 아버지가 알아듣는 경우는 대중없었다. 어떨 땐 작게 말해도 알아듣고, 어떨 땐 힘주어 말해도 못 알아들었다. 나는 어느 순간 이것이 아버지의 선택권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아버지와의 소통을 위해서는 내가 더 크게 말해야 했다. 더욱 또박또박, 내 생각을 전달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크게 말한들 아버지가 이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를 이해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의 유대는 목소리를 높인다고 통할 것이 아니었다. 도무지 그럴만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아버지와 나는 피차일반이다. 소리의 크기로 인해 못 알아들은 것부터 시작해서, 짧은 배경지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우리 사이에는 많은 것들이 생략되었다. 기껏 마음을 털어놓았는데 딴 소리를 할 때, 대화의 맥을 짚지 못한 채 자기 식대로 해석해 버리고 결론지을 때, 그때마다 느꼈던 좌절감을 김창옥 님은 이해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아버지 본인의 핸디캡을 내가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아버지가 모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일일이 목소리를 높여 전달했다면 어땠을까. 서 있는 곳이 아닌 저 밑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했던, 소통의 시도를 위한 노력이 그에게 전달되었을까? 그리하여 우리는, 말이 아닌 마음으로 통하는 사이가 되었을까, 하고.


그가 내게 있어 그렇게 해서라도 소통을 하고 싶을 만한 사람이었어야 했는지, 소통의 노력을 통해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를 좀 더 애틋하게 만들어갔어야 했는지, 뭐가 먼저였어야 가능한 일이었을지 아직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소통이 안되면 고통이 온다는 사실이다.


평생을 아버지와 살고 계신 어머니는 덩달아 목소리가 커졌다. 그렇다고 두 분이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나는 귀가 아직 밝으신 어머니와도 소통이 어렵다. 그러니 소통은 마음으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소통은 마음을 쓰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기본적으로 대화 목소리가 작다. 그런데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은 목소리가 크다. 아무래도 내가 결혼 전에 아버지와의 소통을 위해 좀 더 노력했어야 밸런스가 맞았을 것 같다.


소통이 없으면 고통이 온다. 그런데 소통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써야 한다. 마음을 쓰는 일에도 고통이 따른다. 덮어놓은 마음을 오랜만에 쓰려니 먼지가 풀풀 날린다. 켁켁 기침이 난다. 빨아보려고 몇 번 문지르니 너덜너덜해진다. 이걸로 닦는다고 닦아질까. 오히려 오물을 더 묻히는 게 아닌지 염려도 된다.


그래도 방치해 두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어차피 방치해 두면 구석에서 썩어갈 텐데, 썩으면 냄새도 날 테지. 마음 쓰는 일에는 수고와 고통이 따르지만 덮어두어서도 안 되는 것이 마음이다. 그러므로 써야 한다, 아직 버리지 않은 마음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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