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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l 17. 2024

그대를 그대로 드러내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 의해 우리의 삶은 흔들리고 있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세상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며 살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지식의 실천을 막는 수많은 장치가 있다. 세상에 널린 온갖 '수치심'이 바로 그것이다. (중략) 온갖 수치와 평균의 유혹에서 벗어나 당신이 정한 삶의 수치를 주장하라.

-김종원, <인문학적 성장을 위한 8개의 질문>


주체적인 삶을 향한 갈망이 사무쳤던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 대한 지긋지긋한 감정, 하루를 살아내었다는 뿌듯함이 아닌 버텨내었다는 고된 한숨, 똑같은 내일일 거라는 절망감.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주워 먹기식 감사로 대충 넘기던 날들. 이렇게 쌓아 올린, 아니 아무렇게나 널어놓은 날들에 대한 감정의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방치된 삶의 부작용이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앞의 생, 하나뿐인 내 삶에 대한 갈증이 심각했던 날,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타는 목마름으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세상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법 중 하나는 무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특출 난 사람이 되기엔 능력이 부족했으니 무난한 사람을 택하는 쪽이 편했다. 성격이 무난한 편은 아니었지만 인간관계는 무난하게 지내왔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회사라는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늘고 길게 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나는 사실 그렇게 무난한 사람은 아닌데, 누구보다도 삶을 어렵게 다루는 사람인데. 무엇 하나 쉽게 할 수가 없는 사람인데, 평균을 따라잡기에도 버거운 사람인데. 보통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오로지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쫓아가다가 자빠져버린 나는, 발랑 뒤집어져서 버둥거리는 장수풍뎅이와 다를 게 없었다. 그 자체로 수치스러웠다.


'온갖 수치와 평균에서 벗어나라'는 작가의 문장에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난다. 다시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협찬이라는 것을 받게 되었다. 무료로 누리는 서비스는 달콤했지만, 그것을 위해 사진을 찍고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과정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 좀 먹자고 그럴 일이야? 이것 사 먹을 돈도 없어서? 내면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 이것은 나의 소리인가, 누구의 소리인가.


블로거임을 밝히고 식당에 입장하는 순간은 이제 자연스러워졌지만, 처음에는 부끄럽기도 했다.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을 능력이 되지 않아서 블로거 활동을 한다는 자격지심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목표한 상위노출이 잘 되기도 하고, 업장으로부터 감사인사를 받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의 기반은 나의 글이다. 브런치에 쓰는 글과는 형식과 성격이 다르지만,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을 표현해 낸, 내 속에서 나온 나의 글이다. 나의 진심과 정성을 꾹꾹 눌러쓴 글이 쌓이고 쌓인 덕분에 이제는 당당하고 오히려 자랑스럽기기까지 하다. 나는 이거 글 쓰고 공짜로 먹는데, 하고.


내 삶의 수치는 내가 정한다. 내가 정한 수치는 내가 감내할 것이다. 평균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그런 나를 비웃더라도 상관없다. 내가 정한 수치를 주장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내기로 했다.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평균적인 삶을 쫓아가는 건 이만하면 되었다. 그동안 애썼다. 이것은 나의 안위를 위해 여기서 멈추겠다는 안일함이 아니다. 이제라도 나의 삶을 살겠다는 강한 의지다.

  

앞서 가려는 경쟁을 버리고
혼자 가는 유일의 길을 찾는다.


*제목과 박스처리한 내용, 마지막 줄은 김종원 작가의 문장을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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