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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Jan 12. 2016

불친절한 위로



누군가의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 주기 위해

위로가 존재하며

위로는 대개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전해진다.

다 괜찮을 거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는 것과 힘내라고 등을 토닥여주는 것

모두 삶에 지친 이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행위이다.

두 가지 중 하나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된 위로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두 가지를 모두 했다고 해서 잘한 위로라고도 말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고단한 마음을 위안하고자 한다면 

우선적으로 나 자신은 상대방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가져야 한다.

상대방에게 전하는 말과 행동은 이해와 공감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부수적인 수단일 뿐이지,

위로에 있어 절대 없어선 안될 필요조건이 아니다.

상대방은 단순히 나의 말과 행동에 위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해와 공감을 느끼고

따뜻한 위안을 받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것 없이 상대방에게 위로의 말과 행동을 건넨다면

상대는 진정한 위로를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는 허울뿐인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거짓 위안은 안 하는 것만 못하며 빈껍데기 위로를 받은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위로는 건네는 사람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친한 지인에게 받는 위로와 자신의 가족에게 받는 위로가

서로 의미는 같더라도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

서로 간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말과 행동은 조금씩 느슨해지면서 거리낌 없이 행해지기도 하는데,

거리낌이 없다고 하여 상대를 막 대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사이가 가까울수록 더욱 사려 깊게 상대를 배려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상대를 거침없이 대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와의 사이가 두터울수록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게 되고,

서로 상처를 받기도 쉽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건넨 위로가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고

때로는

이 사람이 나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몰아세우는 것 같다고 느낄 수도 있다.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나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위로가 친절하지 못하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위로는 아니다.

나 자신이 상대방의 뜻을 느낄 수 있다면 그의 냉정한 말은 단지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내뱉은

쓴소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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