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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여행자 Jan 06. 2017

내가 있는 곳이 곧 나의 존재다.

우유니의 홍학을 드셔 보셨나요?

가장 일상적인 철학, 여행 - 중남미 243일차


우유니에 대한 미적지근한 첫인상을 뒤로하고 숙소로 이동했다. 놀라움은 그곳에서 시작됐다. 호텔 건물이 소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사실 호텔씩이나 되는 건물은 아니다. 방에 들어가 슬쩍 벽을 긁어내어 보았다. 정말 가루가 난다. 맛을 보니 짜다. 어린 시절 소금으로 지어진 마을에 대한 동화를 떠올린다. 비가 오고 홍수가 나서 모두 사라져 버린 마을이다. 이곳은 어떨까. 해마다 돌아오는 우기에 안전할까.

소금으로 만든 집, 아늑하다

엉뚱한 상상을 하던 차에 곧 저녁시간이 되었다. 가이드 겸 요리사가 식사를 준비해왔다. 얼핏 보니치 치킨 커틀릿이다. 생김새도 냄새도 비슷하다. 다른 점은 양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무엇인고 물어보니 맞춰 보란다. 숙소 앞에 있던 동물이라고. 들어오는 길에 보았던 그것은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물가에 서 있던 유일한 짐승이다. 나는 그날 저녁 홍학을 먹었다.

날개 한 쪽을 한 사람이 다 못 먹는다

한국에서 홍학은 귀하다. 목의 날짐승들은 예로부터 평화와 장수를 상징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유니에서는 여행자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일용할 양식일 뿐이다. 우유니에서 보았던 홍학의 '고고함'은 몇 시간 사이에 식탁 위 양식의 '일용함'으로 바뀌었다. 존재에 대한 가치는 공간이라는 맥락(context)에 지배된다. 존재하는 곳이 곧 그 '존재'를 규정한다는 의미이다.

고고한 자태를 뽐내던 우유니 사막의 홍학

장기 여행자들이 경험하는 또 하나의 특권은 자존감의 회복이다. 한국 청년들은 치열한 경쟁 시스템에 놓여 있다.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교육, 취업, 결혼까지 모든 것이 경쟁이다. 당연히 위축감과 조급함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고유의 가치를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오직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규정한다. 그런데 한 번 울타리를 벗어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리고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낸다. 그렇게 치열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고.

우유니에서 나는 어떤 의미의 존재였을까.


여행자의 첫 번째 질문은 '어디에서 왔는가'이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어디로 가느냐'이다.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어떤 직장을 다녔는지, 그리고 돈은 얼마나 버는지 등은 전혀 관심 밖이다. 오직 왜 여행을 하는지, 어떤 여정을 떠나는지 궁금할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쓸모 있는 존재인지의 물음이 가장 중요하다. 여행지에서는 어떤 여행을 하는지가 궁금하다.  나는 그것이 인간의 고유성에 더 가까운 것을 묻는 물음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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