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들 연애 예능 얘기 하는데... 나도 끼고 싶어...
최근 우리 회사에선 다들 월요일엔 <환승연애3> 이야기, 수요일엔 <솔로지옥3> 이야기다. 금요일 공개인 <환승연애3>를 주말동안 보고 와서 얘기하고, 화요일 공개인 <솔로지옥3>를 그날 바로 챙겨보고 얘기하는 것이다. 심지어 최고 화제작이었던 <나는 솔로> 16기는 같이 얘기하며 보기 위해 회사에서 함께 본방사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OTT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본방 시간을 맞추기보단 원하는 시간을 골라 콘텐츠를 보게 됐다. 그런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본방사수라니 정말 오랜만이다. 그만큼 요새 연애 예능들이 인기가 많은 것이다.
연애 예능을 보지 않던 사람들에게는 힘든 상황일 듯하다. 대화에 낄 수 없으니 소외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만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나 싶기도 하고, 결국 사람들과 얘기하기 위해 억지로라도 봐야 하나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익숙지 않던 사람이 연애 예능을 갑자기 보긴 쉽지 않다. 일단 보통 연애 예능에선 출연자들의 첫 등장과 소개만 한 시간인데, 이 어색한 첫 만남을 넘어가지 못하고 하차하는 사람이 반 이상이다. 첫 고비를 넘겨도 순탄하진 않다. 많은 인물의 서사를 모두 보도록 늘어놓는 구성에다, 군데군데 강조하는 부분에서 반복이나 슬로우를 주는 소위 ‘쪼는 부분’(궁금증을 유발하는 부분)은 빠른 전개를 선호하는 요즘 시청자에게는 끝까지 고구마일 것이다. 재미를 느끼고 관심이 생기기도 전에 한없이 늘어지는 서사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거다.
<솔로지옥3>는 전형적인 연애 예능의 늘어지는 서사를 깨버린다. 먼저 첫 회차에 소개를 빨리 쳐낸 후, 바로 첫인상 선택으로 첫 데이트가 성사되고 그 내용까지 빠르게 다룬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시청자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빠르게 나온다. 심지어 모든 시청자가 궁금해하는 최종 결과도 보통은 한 회차로 구성할 정도로 쪼는데, <솔로지옥3>는 25분 이내로 줄인다. 오랜 시간 인내해야 하는 여타 프로그램들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연애 예능 초보자들에게 <솔로지옥3>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다. 연애 예능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참고 기다릴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초보자에겐 그 맛을 빨리 떠먹여 줘야 하는 거다. <솔로지옥3>는 초보자에게 딱 맞게 기다림이 없는 ‘패스트푸드’ 프로그램이다.
장르 : 연애, 데이팅, 리얼리티 예능
플랫폼 : 넷플릭스
출연 : 진행자 – 홍진경, 이다희, 규현, 한해, 덱스 / 참가자 – 이관희, 이진석, 최민우, 박민규, 손원익, 윤하빈,최혜선,안민영,김규리,윤하정,유시은,조민지
회차 : 11부작
러닝 타임 : 회당 평균 약 65분 정도
<솔로지옥3>의 재밌는 점 0. 빠른 서사
앞서서도 얘기했듯 내가 <솔로지옥3>를 추천하는 이유 0번은 빠른 서사다. 짧은 시간 내에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을 자극하는 숏폼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라 시청자들은 기다림에 박하다. 특히 내가 보고 싶어 선택한 게 아닌 콘텐츠는 최대한 빨리 재미를 주지 못하면 버려진다. 원래 관심 없던 사람들을 끌어들여 시청층을 확장하려면 먼저 콘텐츠가 간결해야 한다. 하지만 짧다고 다 재밌는 것은 아니다. 짧은 내용 안에 재미포인트가 있어야 하고, 또 그 포인트가 온전히 전달되도록 표현돼야 한다. 간결하다는 것은 짧으면서도 짜임새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솔로지옥3>는 간결하다. 앞서서 <솔로지옥3>가 어떻게 이야기를 빨리 진행시키는지를 봤으니, 지금부터는 그 속에 어떤 재미가 있는지 얘기해 보려고 한다.
<솔로지옥3>의 재밌는 점 1.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화려한 비주얼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운명처럼 만난 멋진 상대와 마음이 통하고, 럭셔리한 데이트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에 빠지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장면이지 않을까? <솔로지옥3>는 이런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가장 화려하게 재현한다. 일단 비주얼 위주로 섭외했는지 모두 잘생기고 몸도 좋은 참가자들이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한껏 꾸미고 아름다움을 뽐낸다. 여기에 배경도 아름답다. 드넓은 시티뷰 사이에 우뚝 솟은 최고급 호텔에서 스테이크×랍스터를 중심으로 한가득 차려진 호화로운 음식과 마사지×수영장과 같은 서비스를 마음껏 즐기는 천국도는 당연히 멋지다. 의외로 황량한 무인도이기만 할 것 같았던 지옥도도 굉장히 이쁘다. 파란 바다와 새하얀 백사장을 배경으로 꽃문×꽃배와 같은 조형물들을 꾸며놔 분위기만큼은 아름다운 휴양지 같은 느낌도 든다. 이렇듯 <솔로지옥3>는 모든 장면을 화려한 판타지로 가득 채워 보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한다.
<솔로지옥3>의 재밌는 점 2. 재미있는 참가자들이 만드는 자극적인 사건들
리얼리티 예능의 내용을 만드는 건 결국 출연자이다. 물론 제작진들도 여러 상황들을 세팅해 재밌는 스토리를 유도한다. 하지만 이것은 출연자들이 더 잘 즐길 수 있는 가능성만 열어놓을 뿐이고, 실제론 대본을 줄 수 없으니 직접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다. 그나마 편집으로 내용을 다듬어 볼 수는 있겠지만 없던 얘기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콘텐츠에 재밌는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데는 상황을 직접 풀어가는 출연자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솔로지옥3>의 참가자들은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재밌다. 여우같이 자신감을 뽐내던 사람이 잡히지 않은 것 같은 상대에겐 순한 양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지고지순한 듯한 상대에게 방심하는 사이에 상대에게 다른 짝이 생겨 상황이 역전돼 휘둘리기도 하고,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 누구누구다 찍기도 한다. 잘생기고 매력 있는 <솔로지옥3>의 참가자들은 자신감이 넘친다. 그래서 더 자기를 드러내며 적극적으로 행동해 재밌는 상황이 많이 만들어진 듯하다. <솔로지옥3>는 재미있는 참가자들이 만든 사건들이 가득해 한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솔로지옥3>의 재밌는 점 3. 지옥도가 두 개!
<솔로지옥3>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첫 회 끝에 처음 보는 사람이 자기도 지옥도에서 왔다고 했던 것이다. <솔로지옥3>에선 1, 2와 다르게 지옥도가 두 개이다. 이 사실을 시청자는 첫 회차 내내 알지 못한다. ‘출연자가 너무 적은 것 아닌가?’ 혹은 ‘너무 빨리 천국도에 가는 거 아닌가?’하는 약간의 위화감은 들지만 그리 의심하진 않는다. 그런데 천국도 데이트가 잘 마무리된 시점에 커플이 함께 지옥도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급격히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다른 지옥도에서 온 참가자가 등장하며 모든 의문과 위화감이 해소된다.
모든 것은 내가 알지 못하던 또 하나의 지옥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마치 세상은 사실 가상현실이었던 <매트릭스>처럼 ‘세계관의 숨겨진 이면’이 드러나며 의혹들을 한꺼번에 해소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구성이 요즘엔 예능에서도 종종 보인다. 처음엔 몰랐던 야외팀이 계속 저택에 영향을 준 <피의 게임2>도 이와 비슷하다. ‘세계관의 숨겨진 이면’ 구성은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에서도 집중도를 확 끌어올리는 좋은 요소인 듯하다.
<솔로지옥3>의 아쉬운 점 1. 지옥도는 열악한 환경의 무인도이다?
분명 괜찮은 콘텐츠인 <솔로지옥3>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먼저 지옥도는 지옥은커녕 야생도 아니다. <솔로지옥>은 ‘솔로들은 척박한 야생의 지옥도에 머물고, 커플이 돼야만 호화로운 천국도로 떠날 수 있다’는 룰을 가장 먼저 소개해 준다. 두 장소의 극적인 차이가 <솔로지옥>의 1번 아이덴티티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순한맛 지옥도에 의해 허울뿐인 이야기로만 남게 된다. 일단 식재료부터 야생에서 수렵×채집하지 않고 모두 제공해준다. 그나마 초반에는 생당근 같은 것만 준다거나, 요리를 직접 해야 식사를 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후반에는 아예 식사를 제공해 줘서 야생의 느낌이 완전히 사라진다. 불을 피우기 위해 장작을 패고 직접 불씨를 붙이는 것도 첫 회차에만 나올 뿐이다. 여기에 배경까지 이쁘게 꾸며 놓았으니 지옥도는 호화롭지만 않을 뿐 천국도와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야생에서 펼쳐지는 데이팅에서만 볼 수 있는 원초적인 매력이 드러난다거나, 천국도와의 대비만으로 커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더 부추기고 감정이입하게 하지 못해 지옥도에 기대했던 많은 부분들이 충족되지 못했다.
<솔로지옥3>의 아쉬운 점 2. 서사가 빠른 만큼 촘촘하지 못한 감정 묘사
세밀하지 못한 묘사는 빠른 서사가 가진 동전의 뒷면이다. 내용이 늘어지지 않게 빨리 쳐내는 만큼 개별 사건의 설명은 자세할 수 없다. 이는 일이 진행되는 줄거리를 파악하는 데엔 문제가 없지만, 그 속에 있는 인물들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하기 어렵게 한다. 마치 MBTI가 T(사고형)인 사람이 설명하는 이야기처럼 감정은 없고 사실만 나열된 느낌이 된달까? 실제로 첫 회차부터 성사된 데이트는 시청자는 물론 출연자도 감정에 몰입하기 전에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어색한 기류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출연자까지도 감정이 생기기 전인데 속도를 몰아붙인 건 어찌 보면 기획에서부터 지옥도의 비밀을 첫 회에 빨리 보여주기 위해 호흡이 이미 빠른 데도 더 욕심을 부렸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그나마 이후 회차에는 감정은 생긴 듯한데, 이때도 묘사가 덜 돼 공감하긴 어려웠던 부분이 꽤 있었다.
빠른 서사와 세밀한 묘사, 양쪽을 다 취할 수는 없다. 중간에서 밸런스를 잘 맞춰 나름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지만 모든 사람의 취향을 맞출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최적이라 생각한 지점에서도 다른 사람은 한쪽으로 쏠렸다고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솔로지옥3>는 빠른 서사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기다림 없이 연애 예능의 재미를 맛볼 수 있게 해 연애 예능 초심자에게 딱 맞다. 만약 당신이 첫 연애 예능으로 <솔로지옥3>를 시도해 나름 재밌게 봤는데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드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연애 예능에 본격적으로 입문했으니 이번엔 좀 더 딥한, 묘사가 아주 세밀한 프로그램을 봐보는 것도 좋다. 좀 더 감정선이 굵은 <환승연애3>이나 현실 연애를 보여주는 <나는 솔로> 같은 프로그램 말이다.
<솔로지옥3> - 평점 4/5
결승선까지 지치지 않고 달려가는 빠른 호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