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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리 Jan 26. 2024

01. 꾸준함이 만든 자신감

한 걸음 걷다보니 어느 샌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홉 수 요리저리 피해가며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연달아 낳아 키우는 워킹 맘으로 고군분투하다보니 ‘자기관리’ 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잘 하는 사람은 또 잘 하시겠지만 저는 이 사실을 핑계 삼아 불어난 살들에 대한 항변이라도 하고 싶은 여느 평범한 40대 중반 여성인지라 늘 이 말을 달고 살아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핑계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몸에 이상신호가 오게 된 것이다.

 나는 체중이 어느 한계점을 넘어서면 늘 온 몸 구석구석에 염증이 생기곤 했다. 둘째를 놓고 두 번째 모유수유를 하면서 허기짐을 조금도 견디지 못하며 입에 먹을 것을 달고 살았더니 인생최고의 몸무게를 찍게 되었고 그 때도 참 많이 아팠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잘 못된 길을 가다가 충분히 다시 돌아와 항로를 재정비할 체력이 되는 젊은이였기에, 각종 다이어트 지식들을 섭렵하여 적정 체중으로 내려와 건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2년 전, 40대 중반이 된 나는 단시간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쳐 몸에 베인 잘못된 식습관과 태생부터 운동을 싫어하는 성향으로, 시나브로 체중이 늘어나, 다시 인생최고의 체중 턱밑까지 도착해 버렸다. ‘갱년기’ 라는 무서운 시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기에 살을 빼야 한다는 사실은 직시하면서도 방법을 놓고 도저히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몰 스텝’ ‘작은 습관’ 이라는 말들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나 역시 의도치 않게 눈과 귀로 글들이나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운동화라도 신어봐?’ 

 이 생각을 하고 실제로 운동화를 신기까지 딱 한 달이 걸렸다.
 22년, 코로나시기가 점점 벗어나고 위드 코로나로 전환이 되어가면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기류의 영향을 조금은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일단 나가자, 라는 생각으로 늘 벼르던 운동화에 발을 넣었다.

 ‘신었으니 나가볼까?’

 처음 집을 나설 때에는 아무런 준비물도 없었다. 운동을 정말 싫어하는 나에게 운동화를 신기 위해 마음을 움직이는 일 자체가 엄청나게 큰 준비였기 때문이다. 그 시작이 벚꽃이 흩날리는 봄이었던 것이 또 하나의 도움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귀에 꼽은 이어폰도 없었고, 동행자도 없었기에 나의 걸음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고 또 처음이 아니지만 처음인 듯한 우리 동네의 풍경들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와 가슴에 담겼다.
 ‘우리 동네에 벚꽃이 이렇게나 많았나?’
 벚꽃은 명소에만 있는 나무인줄 알았다.
 그렇게 생경하면서도 설레는 첫 걷기활동이후, 나는 걷는 일에 푹 빠져 틈만 나면 걸었다.

 처음이 어렵지 나의 걷는 일은 기하급수적으로 잦아지고 길어졌다. 일부러 걸으러 나가면 또 마음을 내어야 하니, 출근길과 퇴근길, 점심 먹으로 식당에 다녀오는 길 등 외출하는 일 앞 뒤에 붙여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니 매일 만보를 찍는 일이 엄청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길이 지겨우면 지도를 보며 다른 길을 걷기도 하고, ‘걷기 좋은 길’을 검색해서 나들이 삼아 걸으러 가기도 했다. 이것만으로도 운동을 정말 멀리하던 나에게는 큰 변화였는데, 너무나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달리고 싶어진 것이다!

 한번은 이왕 걷는 김에 걷기 대회라도 나가볼까 하여 검색을 하는데, 걷기 대회는 생각보다 잘 보이지 않고 대신 ‘달리기 대회’ ‘마라톤 대회’ 등이 검색이 되는 것이었다. 궁금증에 클릭을 하고, 나는 홀린 듯 5km 건강달리기 대회를 신청하게 되었다.
 평소 걷기를 계속하니 속도가 붙어 5km정도는 걸어도 제한시간인 1시간 안에는 들어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신청을 했는데, 막상 연습 삼아 달려보니 1km 도 못 가서 숨이 차 걷다 뛰다 를 반복하게 되었다.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하고, 대회가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아,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다녀오자 하고 참가!
 결과는 다행히도 예상대로 걷다가 뛰다가 하다 보니 45분 만에 골인 선에 통과를 했다.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이 몸을 휘감았다.

내가, 5km 달리기대회 완주를??!!!

 물론 걷다 뛰다 했지만 제한시간을 10분 넘게 남기고 골인 선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엄청난 기쁨과 성취감을 안겨 주었다. 믿기지가 않았고, 내 자신이 너무 기특해서 메달을 손에 들고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이 대회는 나의 달리기 인생의 시작점이 되어주었다.
 그 뒤로 나는 ‘평생 5km 달리기 대회에 나가며 살 거야’ 라는 마음으로 그해 겨울까지 매달 1회 정도의 대회에 참가하며 평소에도 마음이 동할 때 달리기 시작했다. 원래 달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대회가 없을 때에는 느슨하게 걷고 대회가 코앞에 다가오면 달려보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실력은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쉬지 않고 달리는 구간이 1km에서 2km로, 2km에서 3km로 길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1년 만에 쉬지 않고 5km를 35분에 달리게 되었다.

 좀 달리시는 분들이 보기에는 정말 비약한 발전이지만 내 자신에게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더 놀라웠던 것은, 달리기가 조금씩 늘어가면서 평소 기겁하던 등산이 하고 싶어졌고, 등산을 거듭할수록 새벽마라톤이 하고 싶어졌으며 급기야, 평생 5km 만 달릴 거라던 내가 10km 마라톤대회에 접수를 하게 된 것이다.
 계기는 예상치 못한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왔다. 꿈에 그리던 광안대교 달리기 대회에 접수를 하려는데, 5km는 다리를 건너다 중간에서 다시 돌아 와야 하는 코스이고 10km는 다리를 다 건너가서 광안리 해변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5km는 누가 봐도 아쉬운 코스였고 10km는 누가 봐도 환상적인 코스였던 것이다. 에라! 제한 시간 안에 못 들어오더라도 해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다리 중간에서 돌아오는 것은 싫다! 라는 생각으로 겁도 없이 10km 신청! 그리고 제한시간 1시간30분 내인 1시간 20분에 완주를 성공했다!! 그것도 한 번도 쉬지 않고 말이다!

운동과 담쌓았던 내가,
10km 마라톤을 완주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처음 걸으러 나오려고 운동화를 신던 1년 반 전의 나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만약 꾸준히 달리지 않았다면 5km와 10km를 놓고, 코스가 이게 좋고 저게 좋다는 생각이라도 했을까 싶다. 바로 제일 단거리인 5km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운동화를 신었고, 한 걸음부터 꾸준히 걷고, 걷다 뛰고, 달리고를 꾸준히 해오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만들었던 제한 선을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한 채 뛰어 넘고 있었던 것이다. 운동을 정말 싫어하고 멀리하던 나에게 나도 모르게 ‘자신감’ 이라는 아이가 꾸준함과 함께 자라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포문을 연 10km 달리기를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

 기록이 아주 조금씩이지만 줄어들고 있고 2024년 새해에는 10km를 1시간이내에 완주하고 싶다는 꿈도 생겨났다.

 평생 5km달리기에 만족해도 대단한 일이라고 여겼던 내가 풀코스 마라톤 완주의 큰 꿈도 품게 되었다.

 더 감사한 일은, ‘꾸준함이 자신감을 만든다’ 는 소름 돋는 깨달음이 나의 인생 전반에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늘 말로만 하던 외국어 공부, 해야 하지만 애써 피해오던 경제 공부, 항상 스트레스를 품은 과제로 삼던 살림, 청소, 요리 등의 집안일들... 내 삶의 모든 과정들에 ‘꾸준함이 자신감을 만든다’는 교훈이 녹아들어 작은 한 걸음들을 내딛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마흔 중반임에도 열네 살 딸이 맛볼 만한 성장의 보람을 만끽하고 있고, 소소하지만 꾸준한 도전과 성공의 만족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고 있는 요즘, 나의 5년 뒤가 너무 기대되고 설렌다. 자칫 조급함이나 경솔함, 그리고 자만심도 함께 불러올 수 있으니,

잊지 말자!
꾸준함이 자신감을 만들고, 그 꾸준함은 매일의 작은 걸음들이라는 사실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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