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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리 Feb 04. 2024

02. 서프라이즈 야식파티의 날

아버지의 한 달 용돈과 맞바꾼 내 인생 최고의 돈가스






아버지께서는 아주 성실한 회사원이셨다.

그 성실함 안에는 매일의 회식자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말인즉슨, 엄마와 나는 매일 불규칙한 아버지의 귀가를 마주해야 했다는 것이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인지라 언제 귀가하실지 모를 아버지를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나 역시 회식을 좋아했던 터라 그 당시의 아버지를 지금은 잘 이해할 수 있지만,

그때에는 바로 눈앞에서 오매불망 아버지를 기다리시며 전전긍긍하시는 엄마를 보고 있었던 터라

엄마 편에서, 엄마의 구원투수가 되어 함께 걱정도 하고 잔소리를 거들기도 했었다.


그런 우리 모녀의 걱정이 늘 한 달에 한번 최고점을 찍을 때가 있다.

바로 아버지의 월급날이다. 


급여를 매월 노란 봉투에 담아 오셨던 아버지는 한 번도 그 봉투를 열지 않고 가져오신 적이 없었다.

이 날은 회사 동료분들과 가지는 최고의 단합날이었기 때문에 축배의 잔을 들고서야 귀가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아버지의 월급날은 우리 모녀의 레이더망이 우주 끝까지 치솟는 날이었다.

우리는 아버지와 더불어, 우리 가족 한 달 생활비를 함께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아버지께서는 큰돈을 품에 품고 있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셨는지,

이 날만큼은 적당한 금액을 사용하시고,  딱 적당한 취기로 귀가를 하셨다.




그날도 우리의 레이더망이 하늘 높이 치솟고 있던 날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아~빠~야~!"

아버지의 전화셨다.

"아빠! 빨리 오세요! 너무 늦었어요! 우리 눈, 코 다 빠져요!!"

엄마의 나지막한 한숨소리가 나의 잔소리 버튼을 눌렀다.

"우리 딸~,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먹고 싶은 거?!!"

이미 난 옆에서 놀란 토키눈을 뜨신 엄마를 배신하고 아빠의 아군이 되는 중이었다.

"아빠 아빠!! 햄버거!!"

빨리 집에 오지 않고 뭐 하느냐, 그러다 돈 다 쓰는 거 아니냐, 돈 잃어버리면 어쩔 거냐... 등등등 엄마의 목소리는

나에게 이미 배경음악으로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당연히 전화기 너머에 계신 아버지께도 닿지 못했다.

"알~았어~. 아빠가 햄버거~ 사~갈게~~"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고, 늘 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우리는 동상이몽의 모습으로 "오매불망" 다시 아버지를 기다렸다.




하루 같던 한 시간을 기다린 순간 들려왔던 낯익은 흥얼거림.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우리 아버지 18번이다!

단 걸음에 달려 나가 아버지를 맞이했다.

그리고 두 손에는 한가득 햄버거가 들려 있었다.

아니, 햄버거일 거라 생각한 꾸러미가 양손 가득 들려 있었다...

그런데... 좀 크다, 그리고 많다...

"응? 아빠~ 이거 햄버거야?"

"그래! 햄버거!! 자! 우리 공주 좋아하는 햄버거!"

꾸러미를 받아서 열어 본 우리 모녀의 눈은 이 전에 보기 드물 정도로 커졌다.

"아빠~~ 이건 햄버거가 아니라 돈가스잖아요~~ 그것도... 열... 개...?!"

돈가스라서 더 신이 날 틈도 없이 나는 느껴버렸다, 내 등뒤에서 풍겨오는 엄청난 한기를...

"여보!!!! 지금 제정신이에요???!!!!"

그리고 이어진 폭격기 같은 엄마의 잔소리 ㅎㅎ

아버지는 돈가스를 햄버거로 착각하시고 사 오신 것이다.

그 착각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 돈가스는 경양식이라는 레스토랑에서 팔고 있었고, 햄버거는 빵집에서 팔고 있었는데 가격차이가 거의 10배였다.

그리고 식사에 가까운 돈가스를 10인분이나 사 오셨으니...

엄청나게 쏟아붓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꿀이 뚝뚝 떨어지는 아버지의 눈에는

몰래몰래 기뻐하는 나의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 날 결국 늦은 저녁시간, 마당 넓은 집에 사는 모든 세입자들이 평상에 모여 돈가스 야식파티를 즐겼고,

아버지는 그 달 용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하셨지만

햄버거를 기다렸는데 돈가스를 받은 그날의 환희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버지의 눈에서 떨어진 꿀이 담겨 황홀한 맛을 낸 그날의 돈가스는 여전히 내 인생 최고의 돈가스였다.




Gina SJ Yi (지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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