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리 Jul 12. 2024

긴 여정의 시작점

치매는 그렇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우리엄마에게로 숨어 들었다...




<서막>


1946년생, 

올해로 한국나이 79세, 만나이 77세가 우리 엄마는,

수십년째 당뇨를 앓고 계시고

십수년째 치매를 앓고 계시며

작년부터 신부전이라는 녀석까지 떠맡게 되셨다. 

거기에 당뇨 옵션으로 생긴 당뇨병성 망막증...

(유아기부터 한쪽눈 실명이 되신 건 궂이 빼고라도) 

많은 힘든 병환들과 싸워 오셨고, 또 싸우고 계시느라

너무 많이 지치신 우리 엄마의 그 여정을 오늘은 한번 떠올려 보려 한다. 


첫 시작은 당뇨.

나의 중학생 시절부터 약을 복용하셨는데 그 때의 연세가 사십대 중반. 

외할머니께서 당뇨를 앓으셨기에 유전이 될 걸 걱정하셨겠지만, 

비위가 약하시고 입이 짧은 터라 좋아하는 분식류를 참으로 즐겨 드셨던 터라

어쩌면 당연하게 그 병은 엄마를 찾아 왔다. 

없는 살림에 늦게 얻은 외동딸 키우시느라 본인의 건강을 챙기실 틈도 없이

사십대 오십대를 보내시고, 육십대로 들어서니 역시나 깊어진 당뇨의 늪. 

그 와중에 또 육십중반부터 손주들을 떠맡아... 황혼육아의 길까지 들어서게 되셨다. 

... 적다보니 원흉은 역시나 나였군...

눈에 넣어도 안아프시다며 안고 업고.. 온갖 정성으로 손주들을 키우시더니 

결국 인슐린 주사를 매일 본인손으로 맞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 엄마잡겠다 싶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부모님을 육아에서 해방을 시켜 드리니

다행히 건강을 차츰 회복하시게 되어 안도를 했었다. 

하지만 그 시기도 잠시, 

감히 그 때까지 상상할 수도 없는 병마가 찾아 왔다. 

바로, 이름도 무서운 치매...


<치매인 걸 깨닫기 까지>


때는 2014년경, 

평범하던 어느 날에 엄마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도둑 들었다!"

골목길에 위치한 당시 부모님 댁은 2층짜리 연립주택이었고 복도식이어서

현관이 길 쪽으로 나있던 터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 한마디 다급함에 

나 역시 화들짝놀라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우선 상황파악을 해야 했기에 같이 살고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더니,

"도둑? 무슨 도둑?"

같은 집 다른 방에 계시던 아버지의 반응이다.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옆집 놈이 도둑인데, 들어와서 냉장고에 있던 곶감한 개를 먹었고, 

방에다가 흙을 뿌려놓고 나갔다!"

부모님집 옆집에는 아버지 또래의 점잖으신 포스의 어르신이 혼자 거주를 하고 계셨고, 

한번씩 우리가 놀러를 가면 인사도 잘 받아주셨으며 아버지와 말동무도 자주 하시곤 했다. 

그런 분이 도둑이라고?

이상타, 아무래도 이상하다.


일단 알았다는 답을 하고, 

신랑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내 '신고할 수 있는 사건' 은 아닌 것으로, 

'조금의 의문을 남긴 사건' 으로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번의 엄마 전화, 

"이제 그 놈이 여자를 데리고 와서 우리집에서 샤워를 하고 나갔다!"

"뭐어?! 집에 아무도 없었어요?"

"너거 아빠는 방에서 자느라고 못 봤지. 나는 없었고."

그렇다면 도대체 그 분들의 존재를 본 건 누구라는 말인가...


역시나 무언가 이상이 있음을 감지한 나는, 

그 이상을 일으키는 존재가 엄마임을 확신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한참을 고민하는데, 

또다른 전화한통이 걸려 왔다.

바로, 엄마와 가장 친하신 친구분이셨다.

"너희 엄마, 아무래도 검사를 한번 받아 봐야겠다... 치매인 것 같다."

치매... 치매... 치매...

전화를 끊고 난 뒤에도 자꾸만 윙윙 거리던 그 단어는 

너무나도 무서웠고, 너무나도 두려운 존재였다.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엄청나다는 수식어를 잔뜩 뿜고 다니는 그 존재가 엄마에게 찾아왔을 것 같다는 그 전화한통으로 우리 가족의 일상에는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치매를 확정받기까지>


그 때부터 인터넷 세상은 나의 인도자가 되어 주었다. 

넘치는 정보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도 많았지만, 전혀 길이 보이지 않는 상태보다 낫다고 위안을 하며 그렇게 한 계단씩 올랐던 것 같다. 

각각의 계단에 서서 울기도 화내기도... 두려움에 떨기도 하면서. 


제일 먼저 얻은 정보는, 

* 보건소에 가면 치매판정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치매판정 받으로 보건소에 가자는 말을 엄마에게 할 수 있겠는가...

"내보고 미쳤다고?!"

평소의 불같은 성격으로는 분명 이렇게 반응하실 터. 

방법을 두고 심각하게 고민중이던 나에게 엄마의 전화 한 통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여기 어딘지 모르겠다."

수십년을 다닌 시장에 가서 길을 잃어버린 엄마. 

"엄마, 당황하지 말고 차가 다니는 길로 나가서 택시를 타세요. 그리고 아파트 이름 말하면서 가자고 하세요."

그렇게 그 날 엄마는 무사히 귀가를 했지만, 큰 혼란에 빠지시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혼란을 기회로 삼아 엄마를 설득했다. 

"엄마 뇌에 노화가 와서 기억력이 안 좋아지신 것 같아요. 빨리 진단받고 치료를 받지 않으면 나중에 손주들도 못 알아 보실 수도 있어요."

단번에 엄마의 OK 사인이 떨어졌다. 


그렇게 보건소에 갔고, 

담당자 분께서는 엄마의 첫 한 마디에 바로 고개를 크게 끄덕이셨다. 

"밤마다 옆에 사는 놈이 벽을 뚫어서 사진기를 집어 넣고 내 사진을 찍어가요. 내 사진 팔아먹을라고."

그 날 보건소에서 써 주신 치매진료의뢰서를 가지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그렇게 엄마의 투병이 시작되셨다. 

그것이 이 악마같은 질병과의 시작이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십년넘게 맺어온 그 녀석과의 동행은 처음 느낀 그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고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더 어려운 관계가 되었다. 


그 이야기는 차츰 하나씩 꺼내기로 하고, 

모든 병에는 원인이 존재할 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는 딱히 그런 증세가 보이시지 않고 돌아가신 걸로 알기에 유전적인 요인은 잘 모르겠다. 환경적 요인으로 따져보면, 

(십년간 엄마에게 몰아닥친 치매라는 녀석을 꾸준하게 관찰하고 그 녀석때문에 골치를 앓아본 나름의 분석)


1. 외동딸에 늦둥이인 나는 부모님의 잠자리를 갈라 놓았다. 무엇때문인지 혼자 자기만 하고 가위눌림을 겪었고 언젠가부터 엄마와 나는 작은 방에서 함께 잠을 잤던 것이다. 내가 동생이 없는 이유로 늘 엄마는 이 사실을 꼽았다. 

그런 내가 시집을 가고, 엄마는 한동안 빈둥지증후군과 우울증으로 힘드셨다고 몇 년이 지나서야 말씀하셨었다. 많이 힘드셨다고... 하지만 그 마음의 병에 대한 치료나 보살핌도 제대로 없이 황혼육아를 하셨고, 그렇게 그 마음의 병이 곪은 것은 아닐까... 라고 자꾸 마음이 든다. 


2. 치매가 오기 딱 1년전, 골목에 오픈되어 있는 이 문제의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하신 거였고, 이 집에는 고치기 힘든 크나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수도관이었다. 수도꼭지를 최대로 트러도 손가락 새끼손가락 굵기만큼의 물이 나왔고, 평소에 성격이 급한 편의 엄마는 설거지, 세탁, 청소 등 수돗물을 써야하는 일이 많은 집안일을 해 나가시며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3. 당뇨가 길어지며 조절이 잘 되지 않으셔서 인슐린 주사를 맞으시게 되는 등의 신체건강의 심화로 인한 것도 분명 있었으리라. 


어찌 딱 한 가지만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몇 가지 혹은 수십가지의 요인들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론은 엄마의 뇌는 노화가 진행되었고, 한편으로는 고장난 부분이 있으셔서 정상적인 판단이 힘든 상태가 되셨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엄마와 맞추어 가는 생활패턴을 서서히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통 알츠하이머치매, 파킨슨치매 라고 부르며 크게 두 종류의 치매가 있으신데 하나는 "잊어버리는" 증상의 치매, 하나는 "망상" 증상의 치매이다. 엄마의 경우에는 망상증상이 먼저 오셨고, 서서히 뒤 따라 기억을 상실하시는 증상으로 이어져 왔다. 십 년이 지난 지금은 망상은 거의 없으시고 가족만 알아보시는 상황에 으리게 되었다. 


시작부터 돌이켜 적어나가니 그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그러면서 가슴한쪽이 콕콕 아프기도 하고 벌써부터 그 고통스럽던 기억들이 아련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제발 마지막까지 가족만큼은 알아보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도 본다. 


엄마의 병환들은 떠올리기만해도 힘들고 아픈 것들이지만, 

이렇게 기록을 남기고자 마음을 먹은 이유는 엄마의 머릿속에서 기억들이 하나씩 지워져 가는 그 행태와 반대로 이 공간에서라도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슷한 일들로 당황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공유도 하며 함께 잘 이겨나가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다. 무엇보다도 써내려가는 가운데, 쓴 글들을 읽어나가는 가운데 나 스스로가 위안받고 힘을 얻기 위해서! 꾸준히 이 곳에 아프지만 보듬어야 하는 치매를 포함한 엄마에게 달려 함께 가고 있는 병마들과의 이야기를 남겨 볼까 한다. 

자, 그럼 오늘도 화이팅!!

엄마도, 곁에서 매일 고생하시는 아버지도, 나 그리고 내 옆에서 고생하는 신랑도!!


Gina SJ Yi (지나리)


매거진의 이전글 가슴으로 전해질 사랑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