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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리 Jul 15. 2024

병원선택과 CCTV의 등장

감사한 선생님들과 고마운 만능효자 우리 친정집 CCTV






<병원선택>

엄마의 치매 확정 후, 

병원을 선택해야 하는 큰 관문을 바로 직면했다. 


보건소에서 적어주신 의뢰서를 가지고 사전 지식이나 정보없이 그 근처 종합병원으로 직행했다. 

뇌검사, 기타 등등 검사를 통해 치매가 확실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처방이나 치료를 진행하려 했으나 소소한 사건으로 그 병원과는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글에 거론할 정도도 안될만큼 소소했지만 그 당시에는 뭐가 다 불안하고 조심스러웠기에) 일단 귀가를 했다. 


다음, 네이버, 구글 할 것 없이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모든 사이트를 드나들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수소문을 했는데 문득 내 머릿속을 스치는 병원 하나가 있었다. 

그 날로부터 2년전, 둘째가 태어남과 동시에 친정과 합가를 하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불협화음과 부모님의 급격한 건강악화로 다시 분가를 하면서 내가 겪어야 했던 무수한 감정들과 난관들을 지나는 과정에서 만난 우울증으로 인해 내 발로 찾아갔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크지는 않았지만 나이 지긋하신 의사선생님의 공감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었다. 

딱 두어 달, 상담과 함께 약을 복용했는데 너무 많이 좋아져서 마지막에 꽃을 선물드리고 졸업(?)했던 곳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되었는데 나와의 궁합도 맞았던 곳. 왜 이곳을 잊고 있었을까.


엄마를 모시고 예약을 하고, 검사를 받고 처방을 받아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매라는 것은 정말 아무도 모르게 찾아와서 아무도 모르게 영역을 넓혀가며 또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불투명한 존재가 확실했다. 매월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 와중에도 좋아진 달도 있었고, 급격하게 나빠진 달도 있으면서 그렇게 투병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알았다. 치매라는 것은 증상이 완화되기를 바라는 병이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게 되기를 바래야 하며 그 또한 위안을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뒤로, 장기전이 될 것 같은 치매진료를 위해 집 근처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옮겨 현재까지 진료를 받고 있다. 종합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한번 바뀌셨으니 그 사이 엄마가 거쳐간 선생님들만도 벌써 세 번째가 되었다. 다들 좋으신 분이시라 너무 감사하기만 하다.




<CCTV와의 만남>

하루는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자꾸 이 새끼가 밤마다 우리 현관에 붙어서서 내 사진을 찍는다. 내가 그래서 요새 잠을 못잔다."

복도식 연립주택이라 현관문 바로 옆에 엄마가 주무시는 안방창문이 나 있다. 그 앞에 밤새 아저씨께서 서 계시면서 엄마 사진을 찍으신다는 것이었다.

"엄마!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하세요, 제발! 밤새도록 어떻게 서 있으며 엄마 사진 찍어 가서 뭐할건데!"

그 전에도 수 십, 수 백번, 그 후로도 수 천번을 '소용없는 이야기' 라고는 말을 들었고 깨달았으면서도 당장의 나의 반응은 늘 그랬다. 늘 이렇게 뱉고 후회하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나도 이러니, 함께 사시는 아버지께서는 오죽 하시랴. 

그 말도 안되는 말들에 늘 맞장구를 쳐 주셔야 하니 말이다. 

"CCTV를 달면 어떻겠노?"

아버지의 의견이었다. 

의미가 없는 것을 알지만 나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더 객관적인 증거가 있으니 조금은 더 확실하게 안심을 시켜드릴 수 있지 않을까.


그 당시에는 CCTV가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그렇기에 알아보면 대부분 업체가 사용하는 CCTV 들이 많았고, 비용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도 하늘이 도운 탓일까, 사용하던 통신사에서 홈보이라는 CCTV를 저렴한 월정액으로 내놓은 것이다. 

아, 이거다! 나는 당장 신청하여 월 3000원(당시 출시기념 행사가)을 내고 엄마집 거실에 자그마한 감시자 하나를 들여 놓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현관이 엄마가 말하는 도둑의 주활동 무대였기 때문이다. 

앞선 CCTV는 실내용이라 어쩔수없이 실외용(그것도 방수가 되는...)을 다시 알아봐야 했고, 우리나라 최대의 보안업체 CCTV를 달게 되었다. 한 달에 5만원이라는 거급의 대여 및 유지비가 들었지만 약정기간이 없어 한 두달만 달아놓았다가 엄마가 안심하시면 제거할 생각으로 설치를 결심했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조치 하나하나가 모두 희망이었기 때문에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제발 엄마의 머릿속을 잠식하고 있는 그 '도둑놈'이 사라지길 바라며...




이렇게 엄마집에는 두 대의 CCTV가 안 밖으로, 주야로 감시하게 되었다. 

과연 효과는 어땠을까... 예상했던 대로... 엄마의 도둑놈은 여전히 밤낮으로 엄마를 찾아왔고, 그 놈은 CCTV의 감시망을 다 피할 정도로 도가 튼 놈이었다. 

"CCTV가 싹 다 보고 있는데 아무도 안 왔잖아요! 엄마도 보니까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희안한 놈이라는 거지! 그걸 어떻게 다 피해서 오냐고!"

................ 결국 도돌이표 같은 이 대화는 그 후로도 계속 이어졌고, CCTV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신출귀몰한 사람이라면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이 없으니 CCTV에 찍히는 그 순간, 바로 신고하자고 엄마를 설득시켰다. 

"에휴... 그래, 증거가 없으니 증거가 생길때까지 내가 좀 고생해야지 우짜겠노."

이토록 어이가 없어야 할 엄마의 말씀이 얼마나 큰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얼마 후, 밖에 설치되었던 고가의 CCTV는 제거를 했고, 대신 만원짜리 CCTV모형을 사다 붙여놨다. 엄마에게는 최신형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 뒤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도 인터넷회사에서 제공된 CCTV는 함께였다. 하지만 계단식 아파트로 이사를 갔기에 현관에는 더이상 CCTV가 필요없다는 설득으로 더이상 엄마를 속이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사를 간 후에도 거실과 엄마방에 번갈아 가며 CCTV를 옮겨 두었는데, 여전히 엄마의 그 범상치 않은 도둑놈은 CCTV의 눈을 피해 2층인 엄마방 창문으로 카메라를 수직으로 올려 엄마의 사진을 찍어 가거나, 아파트 1층 현관쪽에 서서 나즈막히 욕설을 내뱉다던지, 눈을 멀게 하기 위해 빛을 반사시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CCTV에 찍힌 증거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어요, 엄마."

라는 말로 그 이상의 진전은 생기지 않았다...(라고 하고 싶지만 사건하나가 생기긴 했다.이건 또 다음에 ㅎㅎ)


아무튼, 

CCTV라는 것은 집을 지키는 존재이지만, 

우리집에서의 CCTV는 그 역할이 많이 달랐다. 

절대 남겨지지 않을 "증거를 기다리자" 는 말이 가능했기에,

엄마의 허무맹랑한 도둑이야기에 공감해 드릴 있는 용기를 나에게 주었고, 

그 용기 덕분에 엄마의 치매 증상을 일부분 일상으로 가져오는 것에 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100프로의 공감을 드리는 일에는 실패했고 앞으로도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맞장구 쳐 드릴 때 아이같이 "그쟈~!" 하면서 잠시나마 숨통을 트이시는 엄마의 모습을 뵐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지금의 엄마는 그 지긋지긋한 놈을 기억력과 함께 떠나보낸지 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친정집 엄마방에는 CCTV가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엄마 아빠와의 소통도구,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관찰도구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제 할일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밤새 잘 주무셨는지, 사건사고는 없는지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녹화된 영상들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놓고 있고, 가끔 고령이신 아버지께서 어떤 서류라던지 물건에 대한 것이라던지 물으려 하실 때 카메라에 비추어 주시면 내가 그걸 보고 설명해 드릴 수도 있다. 아주 편리하고 감사한 존재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요즘에는 엄마의 모습을 하나씩 저장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힘들어 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카메라로 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간혹 보여 주시는 건강한 모습과 또 귀여우신 모습들을 남기고 있다. 잊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고 싶어서...

추억저장소의 역할을 하나 더 부여 받은 CCTV 가 앞으로도 오래오래 엄마를 지켜주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조금은 떨리고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CCTV앱을 열어 본다. 




Gina SJ Yi (지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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