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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Nov 04. 2022

케이크와 나른한 오후와 중독

내가 텅 비어 있는 느낌이 들어서 꾸역꾸역 채워 넣는다. 그게 음식이기도, 쇼핑이기도, 스마트폰이기도 했다.

중독은 건강함의 반대쪽에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다 어느새 금을 밟아버렸을 때, 나는 술래가 되어 중독의 뒤만 쫓는다.

아무 감각을 느낄 수 없을 때까지.

고통을 느끼지 못할 때까지.

나를 잊을 때까지.

결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채우려고.



기하급수적이라는 말을 내 몸무게에 쓰게 될 줄이야.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이 무섭고, 스크린 도어에 내 모습이 비치기라도 하면 깜짝 놀라고, 어느 순간 거울을 보지 않으며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즉각적인 단맛이 주는 행복에 중독돼서 폭식을 멈추지 못할 때가 있었다. 맛있는 음식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만족감을 주어서, 내 곁에 다른 행복이 아무것도 없을 때 가장 먼저 폭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폭식을 하면 할수록 음식에서 느끼는 단순한 행복감보다는, 텅 빈 공허감만이 더, 더 너를 채우라고 외치는 듯했다.

그 허기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을까?


어느 겨울날, 길고양이가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곳을 찾아 나른하게 늘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나까지 절로 나른해져서 쭉 기지개를 켜고 늘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그렇게 고양이처럼 늘어져 쉬고 싶었다.

기력이 없을 땐 그렇게 햇볕을 쬐며 나른하게 늘어져 있는 휴식이 필요했다. 그런데 휴식을 미루다 그게 병이 되면 그저 기력이 없어서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나를 내버려 두고 언제까지나 누워 있었다.


중독은 마음의 거울처럼 나를 투영했다. 잘 벗어날 수 없는 데다 텅 비어버린 나를 채우려고 무언가를 하는데  그것 말고 다른 것은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했다. 늘 그 자리에서 머물러 있다 천천히 뒷걸음치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눈치채지 못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다가 천천히 알아챈다. 중독이 나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걸.


내가 다시 길을 잃고 헤매려는 순간에 기억하면 좋을 순간들. 중독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좋아하는 영화를 골라서 보면서 한 달에 한 번은 케이크를 먹기.

무기력해질 땐 나른한 오후에 햇볕에 늘어진 길고양이처럼 늘어져 쉬기.

쇼핑을 하고 싶을 땐, 내 다정을 쏟고 싶은 좋은 사람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

그리고 사랑하는 강아지들과 산책하기.

.

.

.

모두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양이를 닮아서 우리의 강아지를 닮아서 작은 조각 같은 단순한 행복을 매일 발견했으면 좋겠다. 슬픔은 복잡하지만 행복은 단순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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