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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Oct 29. 2022

우울증이 지겨워

“지겨워, 지겨워.”

돌아오는 환절기마다 비염으로 고생할 때 나오는 소리다. 그리고 약을 먹을 때마다 자주 하는 말이기도 했다.

“지겨워, 지겨워.”

우울증이 지겨워.

누가 어린 나에게 우울증이 만성 질환 같을 수도 있다고 미리 알려주었다면 좀 좋았을걸. 말끔히 나아서 날아갈 것 같은 날이 계속되다가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미래가 찾아오듯이, 어떤 사소한 사고가 나를 다시 망가뜨릴 수도 있다고, 그렇게 얘기해줬더라면 더 좋았을걸.


나의 첫 우울증은 심한 대인기피증과 자기혐오를 동반하며 나타났다. 주위에 견딜 만한 사람과 환경이 없어서 독학을 하기로 했다. 참고서를 펼쳐보자.

책으로 현실 도피를 했든 아니든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가 나를 간신히 깊은 우물에서 끌어 올려주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명상록, 문학을 좋아했는데 그땐 없던 말이지만 ‘갓생 살기’를 목표로 삼아 감사 일기를 3년간 빠짐없이 쓰기도 하고, 롤 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좇아가려 노력했다.

그러자 내 마음 건강이 튼튼해졌다. 난 독학으로 우울증을 이겨냈으니까 그다음에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또 이렇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겠지?

그 당시엔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내가 더 자란다면 뭐든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몇 년 뒤, 다시 우울증이 찾아왔다.

깊은 우물에 빠지자 하늘이 더 조그맣게 보였다.

어린 내가 바란 건 이런 삶은 아니었는데.     


같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지인과 얘기를 하다가, ‘우울증이 지겨워 죽겠어요.’ 한 적이 있다. 지인도 공감했다.

‘이렇게 오래 앓을 줄 누가 알았나요.’

약을 먹는 것도 지겹고, 우울한 것도 지겹고, 병원을 가는 것도 지겹고, 이제는 의사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느껴져서 병원도 지겨웠다.

여기서 더 뭘 말해야 하나요. 낫기는 하는 건가요?

비관적인 말들이 혀끝이라는 다이빙대에서 툭툭 뛰어내리기 전에 마음을 갈무리한다. 하지만 쓰기는 멈출 수 없다. 뛰어내리긴 해야 해.     

난 어린 나에게 수도 없이 ‘우울증이 만성 질환 같은 거라서 다시 널 찾아와서 괴롭힐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럼 어린 나는 이렇게 얘기했겠지?

‘지금 내가 나을 수 없다고 악담을 퍼붓는 거야?’     


나는 아마도 내 마음이 통제 가능할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어떤 어려움이 있든 어떤 상황에서든. 그런데 사람은 통제 가능한 존재도 아니고(그게 자신이든 타인이든), 통제는 어떠한 유기물에도 쓸 수 없는 말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어떤 잡초는 정말 마당에 안 자랐으면 하는데! 자꾸 뽑아야 하니 중노동이다. 물론 아빠가 다하지만).


그러니까 지겨운 우울증 극복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으니 조금 다루기 쉬워졌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우울증에게 말을 건다.

‘오늘은 어때? 책상 앞에 앉을 수는 있는 수준이야?’

‘베개랑 헤어지는 건 내일 할까?’

‘방구석을 봐. 청소 좀 해야겠어. 기분 전환이 될 거야.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일어날 힘도 없다고?’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난 줄 알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이던 나날, 다시금 통제할 수 없어졌던 내 몸과 마음, 모든 것들이 속절없이 나를 무너뜨렸다. 그것도 매일 더 나빠지는 방향으로.

그게 이렇게 오래갈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런데 그렇게 오래 앓을 동안에도 행복한 일은 많았다. 기쁜 순간도 있었고, 좋은 사람도 만났다.

삶을 통제하려 하지 않을 때, 깊은 우물 속에서 뜻밖에도 좋은 일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성장이 꼭 위를 향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더 깊고 어두운 밑바닥으로 뿌리를 넓혀가는 식물이 있듯 어두컴컴한 땅속에 나를 굳건하게 해줄 다른 세계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린 나에게.


인생이 밤뿐이어서 쓸쓸해하는 누군가 있다면, 쓸쓸하더라도 당신의 인생이 밤이어서 더 아름답다고. 밤인데도 당신이 살아왔기에 삶이 애틋하다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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