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다른 때보다 조금 더 오래 동굴 속에 있었다.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잘 쉰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2022년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대체로 마음이 메말라서 무감하고 황무지 같은 버석한 일상을 보냈다. 무얼 해도 즐겁기가 쉽지 않았고, 무망감에 휩싸여 ‘난 아무것도 해낼 수 없어.’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날 것만 같아.’라는 말들의 굴레 속에 있었다.
궁핍하다는 단어는 마음에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나날이었다.
남들처럼 열심히 살지도, 어떤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는 내가 몹시 쓸모없게 느껴졌다. 불안과 초조함에 자꾸만 져서 나를 전부 내준 것 같았다.
그러다 무작정 자주 연락을 하지 않았던 친구의 자취방으로 놀러 갔다. 이틀 밤을 거의 새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누었다. 많은 말과 기억을 흘려보내면서 조금씩 힘이 났다. 어떤 말이 나를 깊숙이 짓누르고 있었다는 걸,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 말이 괜찮은 적이 없었다는 걸 알았다.
퇴사를 하고 난 후에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점점 더 짓눌렸고, 사람들은 내게 묻거나 말했다. 무얼 하는지, 언제까지 쉴 건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그런데 친구는 이렇게 말해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우린 천천히 가자.”
이 말이 왜 이제야 귓가에 닿았을까. 어쩌면 이전부터 계속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늘 해주고 있던 말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누군가 무심코 던지는 무례한 직언들과 조언들이 너무나 많았다.
비록 어떤 말이 나를 수시로 무너뜨릴지라도, 계속 나를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그 한마디 말이 내 인생보다 무겁지 않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마음에 고여 있던 감정에 물꼬를 터주고 물길을 만들어야겠다. 어떤 감정이든 흘러가도록. 고여 있지 않도록.
마침 공교롭게도 친구에게 선물 받은 책, 『출발선 뒤의 초조함』(박참새, 세미콜론, 2022)에서 ‘두낫띵클럽’을 발견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어쩌면 경쟁 사회에서 무책임한 말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불안에서 동력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되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나니, 무엇이든 하고 싶은 힘을 다시 얻었다.
분명히 어딘가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터다. 불안과 초조함이 삶을 좀먹어 갈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절실한 사람이.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서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