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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Nov 20. 2022

저는 공황장애가 아닌 것 같아요

2주 전쯤, 공황발작이 왔다. 1년간 괜찮았다가 다시 겪은 패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다른 때보다 길게 늘어지는 밤을 고요히 보냈다.


‘음, 저는 심리 상담을 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공황발작을 겪은 후, 처음으로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가 내가 한 말이었다. 나는 내가 겪은 공황도 알아지 못했지만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직감에 심리상담센터를 한번 찾아가 보자 결심했다. 그러고는 내가 잘못 온 게 아닐까. 이 정도는 상담도 안 할 것 같은데,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은데,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돌아갈까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결과적으로 상담 선생님은 심리검사 결과지를 들고 당장 정신과를 연결해주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겪은 게 공황이 맞는 건지 의심스럽다. 그렇게까지 죽을 정도의 공포감을 느끼진 않았습니다. 이건 공황이 아닌 거 아닐까요? 하고 늘 고백하고 싶었다. 난 내 우울증이 의심스럽다. 이런저런 뚜렷한 징후들과 증상들이 있어도 난 나를 의심하게 된다. 실은 누군가 꾀병으로 취급할까 봐 두렵다. 그런데 누가 너 그거 꾀병이지? 하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이 스며 있어서 헷갈릴 때가 많다. 기침을 하거나, 열이 나는 병이 아니기에 나는 계속 나를 의심한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원룸에 살 때, 공황은 자주 밤에 오곤 했다. 손발은 떨리고, 식은땀은 줄줄 나고, 그러다 미쳐버릴 것만 같아 눈물이 왈칵 흐르는데 캄캄한 방 안에 아무도 없었다. 나도 없는 것만 같았다. 새벽 세 시, 전화할 사람은 없었다. 내 무릎을 끌어안고 벌벌 떨다가 을 지샜다. 맞은편에는 새벽부터 원룸 오피스텔을 짓는 공사장의 인부들이 부지런히 출근했다. 욕을 하며 고성이 오가는 날이 많았다. 난 잠도 자지 못한 채로 아침을 맞아 제일 먼저 욕설을 듣곤 했다. 참을 수 없이 비참해졌지만 시간이 지나자 곧 무감각해졌다.


잘 모르겠어요. 이것도 공황일까요?

잘 모르겠어요. 이것도 우울증일까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저를 잘 모르겠어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자신이 병에 걸린 거라고 자각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병의 특성과 사회적 인식 때문에 병원의 문턱을 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도 요즘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병원의 문턱을 넘는 일은 한 개인에게는 마법의 주문을 외우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벽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저는 마법사가 아니라서요.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서요.


인지하지 못한 채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을 터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폭증했는데, 상담을 받거나 약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비율은 많지 않다고 하니. 스스로도 모르는 채로 아파하고 있을 사람이 있을 텐데.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고, 의심하고,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고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온다.


공황은 정말 이상해서, 직장에서 멀쩡히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나서다가 복도에서 우두커니 멈춰 선 적도 있었다. 찰나의 순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서 마치 다섯 살 미아가 된 듯 머릿속이 하얬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여기는 어디지? 익숙한 곳에서도 미시감에 휩싸여 난생처음 접하는 사람, 공간처럼 느껴져 공포스러웠다. 엄마 잃은 어린아이처럼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는데, 간신히 화장실까지는 어떻게 갔던 것 같다.


이렇게 일상에 스며든 공황을 안고 어찌저찌 오랫동안 지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패닉이 올까 봐 불안해하는 예기 불안 때문에 오랫동안 집 밖을 못 나선 적도 많고, 지금도 사람 많은 곳과 버스를 두려워한다. 삶에 제약이 많아졌다. 두려움을 이기는 데 에너지를 다 쓰느라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일이 줄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데도 두려움과 불안을 물리쳐야 한다. 말 그대로 이불 밖이 너무 위험했다.


나는 내 우울증을 매번 의심한다. 그래서 늘 우울증에 관해 배우려 한다. 뇌의 신경물질전달에 이상이 생긴 병이고, 증상은 어떻고, 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예를 들어, 생전 처음 들어보는 희귀한 학명을 지닌 병을 대하듯 우울증을 대할 필요가 있다. 우울증에 관한 오해는 많고, 아는 것은 적으니까.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내가 겪는 우울도 정체를 모르겠다. 기록하고 쓰는 일은 아픔을 객관화해서 통증을 줄여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알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혼란에 휩쓸려 살지 않도록 오늘의 나를 다잡아보려고.


나에겐 우울증을 겪는 친구들이 몇 있다. 누구보다 환히 웃으며 타인에게 다정을 한없이 베푸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친구의 웃음과 다정이 가끔 사무치게 슬프다. 타인에겐 다정하지만 자신에겐 누구보다 가혹한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의 다정 때문에 내가 구원받은 순간이 많았지만, 그 다정함이 너에게 향하는 순간이 더 많아지길 바라. 나도 이젠 나에게 다정해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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