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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Nov 28. 2022

아침 일기, 밤의 일기

D+41.

하루에 일기 두 쪽씩 쓰기를 지속한 지 41일째이다. 올해 7월에 아침일기 3쪽 쓰기 유행에 편승해보고자 도전을 시작했지만, 작심삼일도 아닌 작심일일이 반복되다가 페이지 수를 줄이고, 꼭 아침에만 쓸 필요가 있나! 하고 느슨한 융통성을 주어서 아침이 아니라 밤에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게으른 인간치고 수월하게 한 달 이상 일기를 즐겁게 쓰고 있는 중이다.     


오랜만에 매일 일기를 쓰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데, 그러기 위해서 내 일기에는 웬만하면 쓰지 않는 게 있다. 바로 ‘다짐’이다.

다짐은 어릴 때 질리도록 일기에 써봤지만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으니 운에 맡기기로 했다. 미루는 천성도 아주 오래되어 일기에 쓰는 다짐이 소용없음을 일찍 깨닫기도 했다.


한번은 초등학생 때 매일 일기를 썼는데, 매일매일 똑같은 다짐만 했더니 선생님이 ‘이제 다짐은 말고 실천을 하도록!’ 하고 빨간 펜으로 죽죽 강조를 해놓으셨다. 그게 잊히지 않는 걸 보니 그제야 ‘아, 내가 그랬었나?’ 하고 어린 마음에 강렬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그렇게 강조를 하셨을까 하는 마음과, 나는 행동하는 걸 어려워하는 성향의 사람이구나. 하고 나의 일면을 알았다.     


아침과 밤에 번갈아 일기를 쓰면서, 어느 정도의 데이터가 쌓이고 나니 패턴과 성향이 보였다.

아침 일기는 대체로 활기차고 기운이 넘친다. 오늘은 또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 설레하기도 하고, 전날 있었던 일들을 하룻밤 잠들고 난 후에 반추해보니 감정이 식어서 차분하게 서술할 수 있었다. 아무리 전날 밤 참담한 심정으로 잠이 들거나, 우울함에 휩싸여도.


물론 모든 아침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서 매우 저조한 기분으로 오늘 아침 일기는 끔찍하다… 하면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일도 적지 않다. 대체로 아침에 일기를 쓰면 그날 하루를 그래도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내 기준의 활기참이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뭐가 활기찬 거야? 할 수 있다.)

밤의 일기를 처음 쓸 때는, 아침에 일기를 쓸 수가 없어서, 도저히 시간이 안 나거나 기분이 안 들거나 미루고 미루다 쓴 적이 많아서 반성으로 시작한 날이 많았다.


그런데 난 밤의 일기도 좋아한다. 다시 되짚어보니 새벽 감성으로 쓴 일기는 감정의 깊은 굴속으로 들어가 나도 몰랐던 감정들을 속속들이 알아내기도 했다.

뭐야, 나 서운했었네. 아니면 이거 때문에 힘들어했었구나. 그땐 이런 감정을 내가 느꼈던 거구나.


일상에서 부닥치는 상황과 일들에는 감정 반응이 좀 늦는 편이다. 그래서 화를 내는 일도 드물고(당시에 그게 화날 만한 상황이었는지 곱씹으면서 생각하다가 깨닫곤 한다.) 기쁨도 서서히 알아챌 때가 많다.

일기는 그 모든 일들과 내가 느낌 감정을 언어화하면서 내 삶을 더 깊게, 다채롭게, 사랑스럽게,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요즘은 일기를 써서 즐겁다. 매일의 기록을 채워나가는 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별거 아닌 일상이지만 언어화하자고. 나만의 책을 만들자 생각한다. 일기장도 책 한 권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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