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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슴농부 Sep 11. 2024

베트남 국부(國父) 호찌민의 결혼 이야기

베트남 국민들도 잘 모르는 호찌민의 결혼 이야기


베트남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호찌민(胡志明)은 일생을 베트남의 자주독립이라는 목표를 위해 개인적인 삶을 모조리 내버린 채, 평생을 헌신해 온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가이다.

그런 호찌민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고 알고 있다.

인문학 및 여행 유투버, 베트남 여행 가이드 및 심지어 공중파에서도 호찌민은 국가와 결혼하였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고들 이야기한다.

하물며 많은 베트남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호찌민 평전』(윌리엄 J. 듀이커, 정영목 옭김, 푸른 숲, 2019)을 읽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호찌민 평전의 저자인 “윌리엄 J. 듀이커”는 베트남 현대사와 호찌민의 생애를 깊이 있게 연구해 온 역사학자다.

그는 1960년대 중반에 해외 파견 장교로 사이공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호찌민이란 인물에 매혹됐다.

그 후 거의 30년 동안 베트남과 중국, 러시아, 미국에 있는 문서 보관소를 뒤지고 수많은 관련자들을 인터뷰한 끝에 호찌민에 관한 엄청난 양의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여 이를 조사하고 연구한 끝에 『호찌민 평전』이 탄생했다.

윌리엄 J. 듀이커는 1997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역사학과 교수직에서 퇴임했다.

 『호찌민 평전』 p.234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럼 둑 투(호찌민의 동료)“는 쿠옥(호찌민의 가명)에게 탕 투옛 민이라는 젊은 중국 여자를 소개해주었다.

광저우의 부유한 상인 세 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딸이었다.

아버지가 죽자 집에서 쫓겨난 투옛 민은 어려운 형편으로 살아가다가 람 둑 투의 부인과 사귀게 되었고, 그녀를 통해 응우옌 아이 쿠옥(호찌민)을 소개받은 것이다.

투옛 민은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동료들 가운데 일부는 둘의 결혼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쿠옥은 동료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청혼하기로 결심했다.

신혼부부는 보로딘의 저택에 있는 쿠옥의 방에서 살았다.

투옛 민은 용모는 매력적이었지만(어떤 사람의 묘사에 따르면, 그녀는 날씬한 몸매에 피부가 맑고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왔으며 얼굴은 동그스름하고 입이 작았다) 민족 문제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남편도 몇 번 시도를 해본 끝에 그녀를 자신의 정치적 입장으로 전향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다.

쿠옥은 이 결혼에서 딸을 하나 얻었다고 전해진다 “

그리고 호찌민 연보(p.846) 1927년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중국인 탕 투옛 민과 결혼하고 딸 하나를 낳음. 5월 공산주의자 검거 선풍을 피해 홍콩을 거쳐 블라디보스크로 고피. 11월 파리, 베를린 등에 머물며, 12월 반제국주의 동맹 집해위원회에 참석“이라 적혀있다.

그때가 호찌민이 37살 때인 1927년이다.

호찌민의 결혼 생활은 아주 짧았으며 중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체포한다는 소식을 듣고 홍콩으로 홀로 건너가면서 결혼생활이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그 이후에 홍콩에서 만나 새로 사귄 티 민 카이라는 여자친구와 재혼을 하려고 준비를 하였으나 여자 친구가 영국 경찰에 체포되면서 재혼을 하지 못하였고, 여자 친구는 출소 후 호찌민의 친구와 결혼한다.

지금까지의 내용이  『호찌민 평전』에 나오는 호찌민의 결혼 이야기다.

호찌민은 순탄치 못한 짧은 결혼 생활을 끝으로 그 이후로는 줄곤 독신으로 살았다.

베트남을 논할 경우에 호찌민을 배제하고는 베트남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없을 만큼 베트남의 국부이자 국가 영웅이며 또한 베트남의 우상이자 상징이다.

그가 결혼을 하였었고 딸이 있었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찌민 평전을 읽으면서 호찌민의 결혼 이야기 부분이 있기에 소개할 뿐이다.

호찌민은 베트남 국민들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전 국민의 절대적 추앙을 받고 있는 죽어서 신(神)이 된 남자다

참고로 호찌민은 1890년 베트남 응에안(Nghệ An, 乂安) 성 낌리엔에 있는 호앙쭈(Hoàng Trù)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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