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기 신나는 글쓰기(10)
소설 <파우스트>에서 주인공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원하는 걸 다 얻는다. 간절히 원하면 세상이 움직여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어렸을 때 그걸 시험해 보았고 그렇게 되었다. 영혼을 팔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가령 중간고사 수학을 77점을 받았는데 그 과목 수를 받는 게 목표다. 수는 90점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그런데 기말고사 수학을 100점을 받는다고 해서 가능할 것 같나? 나는 가능했다. 야무지게 ‘우’가 아닌 ‘수’를 얻었고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우등상을 놓치지 않았다. 6년 연속 우등상이었다. 기말고시 100점을 받았고 같은 동급생 중 수학을 지레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전교 평균이 60점대여서 결국 88점까지 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A, 즉 수를 받은 내 경험이다.
대학 명성도 당시 나름 나쁘지 않았고 외모도 나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방송계가 어떠냐고 했다. 실제로 당시 2년 선배가 시트콤으로 유명했었고 유명한 아나운서 선배들이 채플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이 직업이 괜찮다며 계속 유혹했다. 고시 공부를 하다가 글을 쓰는 게 재밌어서 글도 쓰고 재미도 얻는 언론고시 공부도 조금 했다. 뜬금없이 온 특별 손님 논평자가 글이 아닌 문학을 하라는 조언 이후 기분이 나빠 열정적으로 언론계에 들어가려고 하려는 열정을 불태우지 않았다. 정말 대충 원서를 썼고 KBS는 심심해서 아나운서 시험을 봤는데 VJ특공대에서 얼굴만 한 손거울을 들고 입을 쫙 벌리면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난리를 내는 그런 여성분을 보면서 속 안 좋은 얼굴로 바라보는 내 모습이 화면에 박제되기도 했다. 내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했다. 내 합격을 바라기 전에 남을 보고 있는 여유로움이라니.나름 그 열정이 없는 나를 탓했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경력 단절자가 아니라 ‘경력 없음’ 자가 되었다. ‘경력 전무’. 그저 나는 나이라는 경력을 먹고 있다. 경력이 없는 삶 또한 새로운 경력이 아닐는지.
그런 모든 선택하지 않은 것을 놔두고 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나는 어릴 때 노래가 좋았다. 근데 웃긴 건 우리 아버지는 박치고 우리 엄마는 꾀꼬리 목소리를 가지신 음치시다. 아빠도 목소리가 좋으시지만 한 박자씩 느리게 불러 성당 성가대에서 빼내기 위해 연습 날 차라리 연애하라며 신붓감으로 소개해 준 여성이 바로 우리 엄마였으니까.아빠가 부르는 노래 속 엇박자의 심각함은 그 정도다. 엄마는 목소리가 예쁜데 도대체 왜 음치이실까? 음치이기에 그 당시 어려운 형편임에도 엄마의 좋은 성적으로 갈 수 있었던 초등 선생님이 보장된 교원전문학교에 가는 것도 포기했을 정도였다. 그런 핏줄의 내가 성악가를 꿈꾸는 건 아마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얻기 힘든 일 아니었을까? 나는 독한 면이 있어서 처음 비웃음으로 시작한 내 노래는 나중에 소름 돋음을 끝나기는 했다. 근데 내 친구 추모양의 노래를 듣고는 가볍게 그 꿈을 포기했다. 추모양은 정말 목소리가 타고났다. 정말 좋은 성량을 가지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목소리가 다름을 깨달은 난 그 친구의 선천적인 재능을 깨닫고 살포시 꿈을 포기했다.
조수미님 노래를 듣다가 불현듯 내 꿈을 깨끗하게 포기시켰던 추양이 생각났다. 노래를 포기한 건 아깝지 않지만, 그 친구를 안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 귀는 정확해서 그 친구는 그 꾀꼬리 같으면서도 정확한 박자와 음정을 구사하는 그 재능으로 어린이 창작동요제 동상을 지나 국립 국악원에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친구만 아니었으면 나는 내가 그래도 노래를 잘하는 축에 든다고 단단히 착각하며 가수를 꿈을 계속 꾸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또 이렇게 경력이 없는 재주도 갖고 있지 않은가! 이런 재주를 가진 사람 아직도 찾지 못했다. 혹시 찾으시면 내게 연락 좀 주시라. 너무 애쓰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의 길이가 정해져 있다면 그 기간을 알차게 재밌게 사는 결정도 나쁘진 않은 듯싶다. 추 양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그렇게 노래를 잘한다고 착각하며 노래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으려나. 아니, 나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더 많으니 다른 아이가 나타나 나를 포기시켰을 것이다. 다른 재밌는 것들을 보라는 신의 계시를 가지고 인연이란 이름으로 나타났겠지.
그때 부모님이 제 그림을 보고 격려를 해줬거나 칭찬의 한 마디라도 남겼으면 저는 평생 동안 그림 그리는 일을 혐오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은 다시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그 누구도 나에게 핀잔을 주거나 믿지 못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요. 그렇다면 이제 늦었을까요? 아니면, 다시 시작하면 그만일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시 그려보고 싶은 생각은 생기네요. 어쩌면 꿈 정도까지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때 어른들 때문에 막혔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다시 노크를 하고 싶긴 해요. 여러분들의 그런 막혀버린 꿈 이야기도 듣고 싶네요. 어른들이 막아버린 소중한 꿈 이야기요.
참고 문장)
나는 이렇게 해서 내 나이 여섯 살 때 화가라는 멋있는 직업을 포기했다.
「사람들은 부랴부랴 급행열차에 뛰어들지만 자기들이 찾는 게 무언지도 이제는 모르고 있어. 그래서 안절부절못하고 뱅뱅 도는 거야….」
「아저씨네 별에 사는 사람들은, 」 어린 왕자가 말했다, 「정원 하나에 장미를 5천 송이나 가꾸고 있어…. 그래도 거기서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찾지는 못해
「하지만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장미꽃 한 송이에서도 물 한 모금에서도 찾을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