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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한엄마 Oct 21. 2021

가수가 되고 싶었던 꿈

7기 신나는 글쓰기(10)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이야기/파우스트

 소설 <파우스트>에서 주인공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원하는 걸 다 얻는다. 간절히 원하면 세상이 움직여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어렸을 때 그걸 시험해 보았고 그렇게 되었다. 영혼을 팔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가령 중간고사 수학을 77점을 받았는데 그 과목 수를 받는 게 목표다. 수는 90점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그런데 기말고사 수학을 100점을 받는다고 해서 가능할 것 같나? 나는 가능했다. 야무지게 ‘우’가 아닌 ‘수’를 얻었고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우등상을 놓치지 않았다. 6년 연속 우등상이었다. 기말고시 100점을 받았고 같은 동급생 중 수학을 지레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전교 평균이 60점대여서 결국 88점까지 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A, 즉 수를 받은 내 경험이다.

학교를 너무 열심히 다녔나.그 이후 경력이 없음.

 대학 명성도 당시 나름 나쁘지 않았고 외모도 나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방송계가 어떠냐고 했다. 실제로 당시 2년 선배가 시트콤으로 유명했었고 유명한 아나운서 선배들이 채플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이 직업이 괜찮다며 계속 유혹했다. 고시 공부를 하다가 글을 쓰는 게 재밌어서 글도 쓰고 재미도 얻는 언론고시 공부도 조금 했다. 뜬금없이 온 특별 손님 논평자가 글이 아닌 문학을 하라는 조언 이후 기분이 나빠 열정적으로 언론계에 들어가려고 하려는 열정을 불태우지 않았다. 정말 대충 원서를 썼고 KBS는 심심해서 아나운서 시험을 봤는데 VJ특공대에서 얼굴만 한 손거울을 들고 입을 쫙 벌리면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난리를 내는 그런 여성분을 보면서 속 안 좋은 얼굴로 바라보는 내 모습이 화면에 박제되기도 했다.  내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했다. 내 합격을 바라기 전에 남을 보고 있는 여유로움이라니.나름 그 열정이 없는 나를 탓했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경력 단절자가 아니라 ‘경력 없음’ 자가 되었다. ‘경력 전무’. 그저 나는 나이라는 경력을 먹고 있다. 경력이 없는 삶 또한 새로운 경력이 아닐는지.

내 표정=이 분 표정 ㅎㅎ

 그런 모든 선택하지 않은 것을 놔두고 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나는 어릴 때 노래가 좋았다. 근데 웃긴 건 우리 아버지는 박치고 우리 엄마는 꾀꼬리 목소리를 가지신 음치시다. 아빠도 목소리가 좋으시지만 한 박자씩 느리게 불러 성당 성가대에서 빼내기 위해 연습 날 차라리 연애하라며 신붓감으로 소개해 준 여성이 바로 우리 엄마였으니까.아빠가 부르는 노래 속 엇박자의 심각함은 그 정도다. 엄마는 목소리가 예쁜데 도대체 왜 음치이실까? 음치이기에 그 당시 어려운 형편임에도 엄마의 좋은 성적으로 갈 수 있었던 초등 선생님이 보장된 교원전문학교에 가는 것도 포기했을 정도였다. 그런 핏줄의 내가 성악가를 꿈꾸는 건 아마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얻기 힘든 일 아니었을까? 나는 독한 면이 있어서 처음 비웃음으로 시작한 내 노래는 나중에 소름 돋음을 끝나기는 했다. 근데 내 친구 추모양의 노래를 듣고는 가볍게 그 꿈을 포기했다. 추모양은 정말 목소리가 타고났다. 정말 좋은 성량을 가지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목소리가 다름을 깨달은 난 그 친구의 선천적인 재능을 깨닫고 살포시 꿈을 포기했다. 


 조수미님 노래를 듣다가 불현듯 내 꿈을 깨끗하게 포기시켰던 추양이 생각났다. 노래를 포기한 건 아깝지 않지만, 그 친구를 안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 귀는 정확해서 그 친구는 그 꾀꼬리 같으면서도 정확한 박자와 음정을 구사하는 그 재능으로 어린이 창작동요제 동상을 지나 국립 국악원에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친구만 아니었으면 나는 내가 그래도 노래를 잘하는 축에 든다고 단단히 착각하며 가수를 꿈을 계속 꾸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또 이렇게 경력이 없는 재주도 갖고 있지 않은가! 이런 재주를 가진 사람 아직도 찾지 못했다. 혹시 찾으시면 내게 연락 좀 주시라. 너무 애쓰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의 길이가 정해져 있다면 그 기간을 알차게 재밌게 사는 결정도 나쁘진 않은 듯싶다. 추 양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그렇게 노래를 잘한다고 착각하며 노래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으려나. 아니, 나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더 많으니 다른 아이가 나타나 나를 포기시켰을 것이다. 다른 재밌는 것들을 보라는 신의 계시를 가지고 인연이란 이름으로 나타났겠지.     


그때 부모님이 제 그림을 보고 격려를 해줬거나 칭찬의 한 마디라도 남겼으면 저는 평생 동안 그림 그리는 일을 혐오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은 다시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그 누구도 나에게 핀잔을 주거나 믿지 못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요. 그렇다면 이제 늦었을까요? 아니면, 다시 시작하면 그만일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시 그려보고 싶은 생각은 생기네요. 어쩌면 꿈 정도까지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때 어른들 때문에 막혔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다시 노크를 하고 싶긴 해요. 여러분들의 그런 막혀버린 꿈 이야기도 듣고 싶네요. 어른들이 막아버린 소중한 꿈 이야기요.

참고 문장)


나는 이렇게 해서 내 나이 여섯 살 때 화가라는 멋있는 직업을 포기했다.


「사람들은 부랴부랴 급행열차에 뛰어들지만 자기들이 찾는 게 무언지도 이제는 모르고 있어. 그래서 안절부절못하고 뱅뱅 도는 거야….」

「아저씨네 별에 사는 사람들은, 」 어린 왕자가 말했다, 「정원 하나에 장미를 5천 송이나 가꾸고 있어…. 그래도 거기서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찾지는 못해

「하지만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장미꽃 한 송이에서도 물 한 모금에서도 찾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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