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다"의 온도
삶은 때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서 틈을 만든다. 그 틈은 균열 같지만, 사실은 새로운 숨을 들이마실 공간이다.
누군가와 함께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나의 온도, 그걸 처음 마주하는 순간이 바로 독립의 시작이다.
이 책은 그 첫 3일의 기록이다. 혼란스럽고, 고요하고, 조금은 슬픈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증거로 남은 나의 독립일지.
첫날은 모든 게 어긋났다.
아이들 계획도, 내 계획도, 사람들과의 시간도 엇나갔다. 마치 새로 짠 인생의 실타래가 아직 엉켜 있는 것처럼.
방을 구하러 간 원룸텔 원장님과도 말이 맞지 않았고, 결국 두 번의 방 교체 끝에야 내 공간을 얻었다. ‘한 달만 지내자.’ 그렇게 타협한 공간은 작은 독방이지만,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큰 결심이었다.
둘째 날 아침, 패딩 점퍼를 덮고 자다 새벽예배에 갔다. 커버도 없는 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니,
이건 여행이 아니라 출근 같았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나 자신으로서의 하루 근무’였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돌아오자, 빨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가사 독립이라지만 여전히 네 사람의 옷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제를 넣고,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와 자연건조를 구분하고,
마른 옷을 곱게 개어 아이들의 방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노동요 대신 넷플릭스를 틀었다.
피지컬 아시아를 보며 그들의 고통과 내 수고를 겹쳐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나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틀었다.
명문가의 딸이 미움을 받아 버려지듯 시집가는 이야기, 그리고 까다로운 남편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그 남편이 아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맛있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울었다.
그 단순한 한마디가 왜 그렇게 아픈지, 나도 몰랐다. 아무도 나에게 ‘맛있다’라는 말을 사랑으로 한 적이 없었구나.
오늘, 전 남편이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다. 같이 식사를 하다 그가 말했다.
“맛있네.”
나는 반사적으로 “다행이네.”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어제의 영화가 떠올랐다.
같은 단어인데, 왜 이렇게 다른가. 영화 속 부부의 대화에는 진심이 있었다. 우리 사이의 말에는 의무만 있었다.회사 점심시간의 예의 같은 대화,
식당의 형식적인 칭찬 같았다.
그 차이에서 나는 허탈했다.
부단히 쌓아올린 17년의 결혼생활이 단 한마디의 온도 차이로 무너진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이제야 내가 진짜 ‘감정의 온도’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벽시계의 초침이 멈춘 듯했고, 창문 밖 가로등의 불빛만이 이 낯선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커버도 없는 매트리스 위, 패딩점퍼를 덮고 누웠다. 천장이 너무 하얗게 보여서 눈을 감았다.
내가 지금 ‘누워 있는 건지’, ‘버티고 있는 건지’ 헷갈릴 만큼 낯선 공간이었다.
겨울이 아닌데도 이불이 그리웠다. 아마도 온기의 부재 때문이겠지. 몸의 온도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
새벽 5시, 알람이 울렸다. 자동적으로 몸이 일어났다. 예배 가야지.
습관이 나를 움직였다.
아무런 의식도 감정도 없이, 그저 매일 하던 대로 길을 걸었다.교회 안에는 여전히 익숙한 사람들의 숨소리가 있었다. 누군가의 기도, 누군가의 눈물, 누군가의 “아멘.” 그 사이에서 나는 그저 숨을 골랐다.
기도를 하기엔, 아직 말이 많았다. 무너진 문장들만 머릿속에 흩어져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니, 햇빛이 커튼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제서야, 정말 ‘하루가 시작되었구나’ 싶었다. 나는 다시 패딩을 벗어 의자에 걸고, 세탁기를 열었다.
빨래는 여전히 많았다.
아이들의 옷, 수건, 내 셔츠.
돌리고, 널고, 개고, 쌓고.
그 반복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살아있기 위한 작은 증거들이라는 걸.
나는 지금 혼자 있지만, 멈춘 게 아니다.
이건 무너짐이 아니라, 정지된 곳에서의 회복이다. 누군가의 사랑이 아니라, 나의 리듬으로 숨 쉬는 연습.
패딩 담요 아래에서 움츠렸던 새벽의 나는 조용히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오늘은 나 자신에게 맛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독립이란 떠남이 아니라,
내가 내게 돌아오는 과정일지도 모른다.익숙한 것들이 사라져야
진짜 온도를 알 수 있으니까.
패딩 한 벌로 버티던 그 새벽처럼, 나는 내 안의 따뜻함을 다시 꺼내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이렇게 기록한다.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