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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Sep 09. 2023

중소기업형 스티븐잡스, 에너지 효율을 찾아서

 나에게는 옷장에 못 들어가는 옷들이 있다. 똑같이 생긴 여름용 바지가 2개, 반팔 티셔츠는 흰색 세 개에 베이지색 세 개. 가을부터는 두꺼운 바지가 2개, 맨투맨 티셔츠가 3개가 된다. 참고로 티셔츠는 모두 무신사 스탠다드에서 산다. 이게 요즘 말하는 무신사 냄새나는 스타일? 전혀 아니다. 집 앞 편의점에 나온 듯 후줄근한 스타일일 뿐이다.


 왜 이 후줄근한 옷 들은 옷장에 들어가지 못할까. 어차피 매일 돌려 입기 때문이다. 스티븐 잡스의 청바지와 까만 목티처럼 나는 매일 똑같은 까만 바지에 계절 따라 반팔에서 긴팔로, 그리고 가끔 색이 바뀔 뿐인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출근한다. 자율복장인 회사로 출근하는 덕분에 나의 셀프 유니폼은 고무줄 바지에 티셔츠가 되었다.


 출근 전 옷을 고르는 수고를 덜고 나니 아침이 엄청나게 심플하고 편해졌다. 사실 전에는 출근할 때도 옷을 골라 입는 것을 즐기기도 했었다. 내일은 이 셔츠에 저 니트를 겹쳐 입어야지. 이 스커트에는 이 블라우스가 어울릴 것 같아.' 그런 걸 전날 저녁부터 생각해놓기도 하고 입고 나간 옷차림이 마음에 들면 회사 거울에 대고 셀카도 찍었다.

 그런데 옷 고르기를 관두고 나니 의외로 그 즐거움이 사라진 것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쌓여있는 출근용 티셔츠 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 것(어차피 다 똑같으니까)을 집어서 목에 꿰면 끝. 그 간편함이 이겼다.


 이 가벼운 아침이 마음에 들어서 출근용 양말도 똑같은 것을 열 다섯 켤레나 샀다. 빨래를 하고 난 뒤 짝을 맞춰 갤 필요도 없이 전부 포개어 출근용 옷 바구니에 넣어두고 위에서 두 짝을 꺼내서 신으면 끝이다. 한 짝 발가락에 구멍이 나면 한 짝만 버리면 된다.



 회사에서 누가 보고 저 사람은 옷도 안 갈아입나 생각했을 수는 있겠다. 그래도 뭐 그런 생각도 한 두 달까지 아닐까. 2년째 같은 옷을 입고 있는데 이젠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라는 마음가짐이다.


 이렇게 출근 복장에 신경을 안 써도 되니 주말 외출을 더 즐기게 되었다. 휴일에는 집 앞 카페에 혼자 책을 읽으러 나갈 때에도 옷차림에 신경을 쓴다. 일종의 선택과 집중이라고 할까. 머리끈 하나 까지도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 외출하면 괜히 기분이 더 좋다.


 덤으로 얻은 장점도 있다. 출근용 옷과 휴일용 옷을 완전히 분리하고 나니 회사원인 나와 그냥 나도 분리되었다. 전에는 미결인 채로 두고 퇴근한 업무가 신경 쓰여 주말에 나가 마무리 짓기도 했다. 뭐든지 되다 만 상태로 널브러져 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금요일 저녁 집에 와서 회사 옷을 빨래 바구니에 던져 넣어버리면 끝. 토요일엔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고 외출한다.


 무용한 것에 신경 쓰느라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회사에 있는 동안 해야 할 업무만 잘하면 되고, 휴일은 온전히 나의 즐거움과 휴식을 위해 힘을 쏟으면 된다. 심플하게 사는 것. 그게 편안한 마음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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