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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Sep 01. 2023

산책, 멋진 만남을 찾아서

길가엔 들꽃이 피고

 머리가 복잡한 날에도 그냥 좀 심심한 날에도 산책을 한다. 퇴근 후 집에 들러 가방을 내려놓고 핸드폰과 이어폰, 집 열쇠만 달랑 챙겨 편한 운동화를 신고 다시 나선다.


 우리 동네는 다층 주택이 빽빽한 오래된 주택가라 골목은 끝없이 얽혀있고 달리는 차는 별로 없으니 아무 방향으로나 걸어가기 좋다.


 땅에 발을 디디는 일은 가끔씩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 걷자! 하고 나가서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 일. 발을 떼었다 다시 딛는 걸음마다 신경을 써서 걷는 것. 어디에 가기 위해서 걷는 길과는 또 다르다.


 잘 가꾸어진 정원을 산책할 때는 거기에 당연히 있을 꽃을 보며 걷는다. 반면 우체국에 가려고만 생각하고 걸어가는 길에는 우체국밖에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목적지는 없는 산책길을 나설 때 뭔가 아름다운 것을 마주치리라는 기대를 가지면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다.


 어느 날의 산책길, 우연한 곳에서 만난 들꽃은 사실 매년 이 자리에 피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길을 몇 번을 지나도 보이지 않던 꽃이 오늘 갑자기 내 눈에 들어오는 것. 허공에다 꽃을 피우는 마술처럼 신기하고 멋진 일이다.

 

 우리 집의 남동향 창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매일 서쪽으로는 발간 노을이 지고 있는 것처럼 당연해서 잊고 있는 것들이 있다. 너무 당연해서 한 번쯤 일부러 찾아 나서야 하는 것들. 시간을 내야 하는 만남들이 있다.


뒷산 소록길 초입의 초롱꽃. 그냥 지나가면 안 보인다.
담장 밑의 매발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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