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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Dec 18. 2022

풀빵 트럭, 흘러가는 계절을 찾아서

계절 지나 또 한 시절

 복날에 삼계탕을 못 먹으면 치킨이라도 시켜먹어야 하고 동지에는 퇴근길에 본죽에 들러서라도 팥죽을 먹어야 한다.

 마침 주말이라면 시장에 있는 죽집에 가서 새알심까지 띄운 팥죽을 사다 먹을 수 있으니 가장 좋다. 계절마다 응당 찾아야 하는 것들이다.

 그냥 지나치면 서운한 그런 것들을 유독 좋아해 반드시 지키려고 하고 있다.


 나의 매 한 해는 이런 계절 풍습과 나만의 루틴으로 들어차 있다.

 1월에는 페퍼톤스의 음악을 들어야 한 해를 시작하는 기분이 나면서 힘도 솟는다. 새 다이어리와 탁상달력을 꺼내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여름이면 꼭 시계줄을 시원해 보이는 것으로 바꾼다. 가벼운 옷차림만큼 가벼운 마음은 여름의 특권이다. 더운 날씨일수록 땀을 흘리며 대청소를 하기에도 좋다. 큰 가구를 옮기는 일도 여름의 초입을 기다렸다 실행한다. 여름까지는 언덕의 오르막길처럼 힘을 끌어올려 살아가는 시기다.


 가을부터 조금 몸도 마음도 차분해진다. 올해도 또 이 계절로 들어서고 있다.

 오늘은 올해 처음으로 풀빵을 파는 트럭을 만나 한 봉지를 샀다. 풀빵이나 어묵, 붕어빵 아니면 호떡. 그런 걸 파는 노점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갈무리를 준비할 때다.

 따끈한 수프나 국물이 좋아지는 것은 몸도 마음도 월동할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탓일 것이다. 목도리나 방한용 모자도 준비해야 한다. 추운 날씨는 나에게는 위험하니까 겨울나기를 단단히 대비하는 편이 좋다. 머리를 감싸는데는 한동안 유행했던 정수리부터 양쪽 귀까지 폭 감싸는 니트나 천으로 된 이어머프가 편하고 좋다.


 12월이 되면 슈톨렌을 먹는다. 내 연말 준비 중 가장 중요한 과업은 올해는 어느 빵집의 슈톨렌을 살 지 고르는 일이다.

 슈거파우더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포장을 벗겨내고 심혈을 기울여 얇게 잘라낸다. 만드는데도 오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 빵은 먹는데도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

 그런 노력의 결과인 빵 조각을 한 달 동안 열심히 먹어줘야 한 해의 큰 일을 다 마친 기분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다시 1월을 준비할 수 있다. 슈톨렌 속의 달콤한 마지팬이야말로 연말의 행복이다.


 봄이면 꽃잎처럼 화사한 노란색이 좋고 가을이면 낙엽 이불 덮은 다람쥐색 옷을 꺼내 입게 되듯이, 날씨와 공기가 바뀌는 대로 행하는 이 일종의 의식들로 시간을 채우는 것.

 그렇게 계절이 지나고 또 한 시절 살았다고 마음이 든든하게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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