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실은 통 속에 든 뇌고, 과학자들이 전기자극을 주고 있는 거라면?
그래도 뭐 별 상관없지 않나. 열심히 전기자극까지 주고 있는데 내(이 실험 뇌)가 사는 걸 보고 과학자들이 실망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본(그리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낀……) 것을 자기 안에서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내가 받아들이는 것 만이 온전히 내 것일 뿐이다.
같은 이유로 각자의 세상은 모두 다른 것이 된다. 그런 세상에서 누가 누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서로를 향한 우리의 이해는 그저 끊임없는 노력의 영역, 가능성만이 존재하는 광활한 대지가 된다.
누가 어떤 눈으로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깊이 짐작하는 외에 다 알 방법이 없지만 때로는 그 사람의 눈으로 하루만 세상을 보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어서 나는 다행히 산속으로 도피하지 않고 세속에서 살아간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사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고급 식당의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에만 단란한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큰 돈을 들여야만 진짜 즐거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쉽지 않는 과잉의 시대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집에 늘어선 고급 제품들, 해외에 빌려놓은 멋들어진 별장. SNS를 켜면 백화점 명품관, 화려한 파티들. 이렇게 초라하게 살아도 되려나 싶어지기까지 한다.
다만 사람은 '그걸 생각하지 마' 라고 하면 더 생각하게 된다지 않는가. '그거 말고 저걸 생각해봐' 라고 해야 실행이 가능하다니 말을 바꾸어야겠다. 그냥 옆에 있는 걸 보라고. 여기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인도에 가면 힐링을 할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 깨달을까. 어차피 사람은 볼 줄 아는 만큼만 본다.
내 세상에 지금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자. 발에 채일 듯 널려있는데 너무 흔해서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굳이 주워들어본다.
그게 어려울 때는 그저 아름다운 수필을 읽는다. 피천득, 박완서, 류시화....... 앞마당 텃밭에서도 보석을 캐내는 이들이 있어서 다행히 그 무한한 여정의 일지를 책으로 고요히 엮어 남겨두었다.
이들의 글을 읽다보면 문득 풀도 좀 뽑고 걸레질도 좀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싶어진다. 시골 절에 내려가 하루나 이틀 묵으면서 그렇게 하면 좋겠는데 지금은 한겨울이라 좀 미뤄둬야겠다. 지난 달에 내려갔을 때도 꽁꽁 얼어있었으니 눈까지 내린 지금은 산길을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내 못미더운 운전실력 탓에 또 스님이 고속도로 입구까지 쫒아오며 지켜보는 수고를 하실까 걱정스럽다. 다만 지난 봄에 쑥이랑 달래를 뜯어다 다듬어 먹었던 기억으로 겨울을 버티고 있으니, 지금은 나가서 전지나 좀 해야겠다.
그렇다. 山中의 노동자에게는 굳이 먼 길을 나서지 않아도 손 볼 땅이 넘쳐난다. 이 계절에 열심히 나무를 다듬어두어야 한다. 톱과 전지가위만 들고 나서도 할 일은 넘쳐난다. 집에 가면 방바닥도 쓸고 창가의 화분에 물도 주어야 한다.
멀리서 찾는 모든 것을 비난할 마음은 없지만, 때로는 옆에 있는 것을 두고 굳이 멀리 가서 찾는 수고를 예방하고 싶을 뿐이다. 그저 아름다운 걸 보고 아름답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길. 그 마음이 언제나 열려있기를.
세상은 보는대로 보이고, 받아들이는대로 온다. 도피하고 싶을 땐 일단 동네를 좀 걸어보자. 본 적 없는 샛길을 탐험하는 일이 즐겁고, 오늘의 구름이 눈에 들어올 때는 이미 눈이 뜨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