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생각

연말에 찾아주는 건 감기 밖에 없다

by 이현선

또 연말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연례행사 같은 거다. 언젠가 몇 년 전에는 감기가 심해 땀을 뻘뻘 흘리며 자고 일어났더니 물 한 모금조차 넘어가지 않아 근 일주일 간을 식음을 전폐한 적도 있었다.


여름에 몽골 여행을 갔던 해에는 아이락이 그렇게 맛있어서 벌컥벌컥 마셨는데 유목민 집 언니가 ‘여름에 아이락을 많이 먹어야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며 나는 오는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 않을거라고 했었다.

놀랍게도 그 해 겨울에는 감기에 걸리지 않아서 아직도 감기가 심하면 아이락을 떠올린다. 집 근처 우즈벡 식당에서 산 페트병에 든 아이란은 지난 여름에 많이 마셨는데 아무래도 그걸로는 안되는걸까.


어쨌든 신정 휴무도 올해의 첫 주말도 집 안에서 요양중이다. 다행히 일요일 저녁인 지금은 좀 나아진 것 같기는 하다. 좀 이따 저녁밥을 먹고 종합감기약을 두 알 더 먹고 약은 이제 그만 먹어야지. 감기약을 두통이나 먹었다.


아픈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부어서 아프고, 하루 종일 기침을 해대는 건 힘들기까지 하다. 그래서 내 몸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 약을 열심히 집어먹게 된다. 조금이라도 빨리 낫고 싶어서.



보일러를 넉넉하게 틀고 집에 들어앉아서 전자렌지에 데운 쌍화탕을 마신다. 책을 읽고-이번 독서 모임 책을 읽고 나서 같이 이야기 나눌 만한 책을 한 권 더 읽다가 좀 지루해져서 다른 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걸 요즘 병렬독서라는 멋진 말로 부르던데 나는 독서 외도라고 부른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백색소음 삼아 틀어놓고 봐도 좋고 안 봐도 좋은 그런 유튜브 영상을 좀 보다가, 시간에 따라 라디오도 좀 듣다가, 뜨개질도 좀 한다.


얼마 전에 본가에 갔다가 뜨개질 상자를 가져왔다. 코바늘로 작은 것들만 만든다. 손을 움직이는 건 좋은 일이다. 자기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만큼 좋은 명상이 없다. 생각은 어디선가 태어나서 밀려온다. 밀물이 다시 썰물로 가듯 그대로 떠내려 보내면 되는데 때로는 보내지 못하고 끌어안은 채 고인 물이 되어버리니 문제다. 몸을 천천히 움직이면, 그리고 거기에 집중하면 생각이 밀려온지도 모를 수 있다. 그럼 생각은 머쓱하게, 알아서 떠난다.

지독하게 찾아온 감기에도 하소연할 데 하나 없는 일상이나, 불필요하고 무용한 생각이 없는 삶은 가볍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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