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선 Nov 06. 2024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안녕, 좋은 아침!

 요즘은 종종 이렇게 인사하며 하루를 시작해 본다. 새로운 아침이 좋지 않을 리가 없다는 믿음으로. 또는 좋은 거라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주문으로.


 누군가 나에게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항상

 ‘한결같아요.’

 라고만 대답한다.

 그러면 물어본 사람이 알아서 생각하겠지.


 내 병에게 새로운 ‘소식’이 있는 요즘은 이상하리만치 그런 연락을 많이 받고 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사람의 '잘 지내지?' 라든가 '건강하지?' 같은 질문들.

 좋은 소식은 물론 아니고, 내 친구는 슬픈 소식이라고 소주잔을 채웠지만 병의 입장에서는 순리대로 진행되고 있을 뿐일 테니 여전히 이렇게 대답한다.

 '저야 뭐, 한결같죠.'


 한동안 내 멋대로 ‘제법 안정되었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역시 삶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법이다.

 환자라는 달갑잖은 명함을 단 이후로 많은 일이 있었다. 한 달, 세 달, 일 년. 갓난아기가 자라듯 하루하루 컨디션이 달라지던 회복기를 지나 최근 몇 년간은

‘이 정도면 살만하지 않아?’

 하는 생각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군데의 직장을 거쳐 자리를 잡고, 분에 넘치는 사람들과의 인연도 있었다. 남들이 하는 건 거의 다 할 수 있다.

 그러니 몸도 마음도 제법 단단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냥 내 상태에 대해 자만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동안 병은 진행되었고 사실은 ‘모르는 게 약’인 상태. 지금은 다시 병원 어플의 예약 일정표에 ‘신경외과 수술‘ 항목이 추가되었다.



 세상에는 너무나 큰 고통을 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럼에도 존경받아 마땅한 삶을 꾸려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간혹 필요이상의 자기 연민이 찾아올 때는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그래도 일단 지금보다는 조금 더 힘들어질 예정이다.

 뇌질환이 으레 그렇듯 나를 처음 만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얼마 전 만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품고 사는 기분이라고. 그는 뇌졸중을 겪고 몇 년에 걸쳐 회복했다고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시한폭탄에는 타이머라도 달려 있지. 지뢰는 안 밟으면 안 터지기라도 하지.


 그런 상황에서 내가 찾은 해결책은 삶을 하루 단위로 살아가는 것이다. 당장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도, 내일 아침엔 내가 하늘에 붕 뜬 유령이 되어서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몸을 바라보며 ‘내가 죽었구나!‘ 하는 신세가 되더라도 후회 없게.

 그러니까 말하자면 매일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로 살아가자. 이 마음만은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언제 갑자기 꺼질지 모르는 생을 불안하고 두려운 상태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래서 갑자기 울어버리기도 한다.

 오랜만의 검사에서 영 좋지 못한 결과를 듣고서 지난 한 달 정도는 걷잡을 수 없는 우울감과 갑작스레 찾아오는 낙천적인 마음의 반복이었다. 그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만으로 심신이 지친 후에야 생각했다.

 결국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이나 뇌경색으로 죽는 것 자체보다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러니까 죽기 쉬운 불확실한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더 두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죽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사는 게 두려운 거야?


 내 미래가 남들보다 좀 더 불확실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면 미래를 위하고 대비하는 모든 행위들이 부담스러워진다. 그것은 애초에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게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해서 지금을 사랑하는 게 어려워지지 않는다. 내가 지나온 일들을 떠올려 보면 모두가 다 나름의 이유와 가치가 있었고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꽤 좋다. 나는 나를 그리고 나를 둘러싼 것들을 사랑해! 이건 중요한 느낌이다.

 불확실한 미래라도 그 덕에 지금을 밀도 있게 만끽하며 살다 보니 이런 사람이 되었다. 미래의 유한함에 정신을 사로잡히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반대로 유한한 생을 무한할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병이다. 불확실한 시간을 착실히 주워서 제법 괜찮은 지금으로 만들자. 미래를 과거로 바꾸어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한다.

 죽음을 생각하는 만큼 지금을 생각하면 사는 건 가벼워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