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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Sep 07. 2023

단어 파먹기 : 남자친구

 오늘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남자친구다. 두 시간의 통화에 걸쳐서 백 서른 번쯤 들은 것 같다.


 만나면 남자친구 얘기만 하는 친구의 존재란 20대 초반에야 흥미로웠다. 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선물 받은 목걸이만 봐도 같이 설레고 남자친구랑 싸운 이야기를 들어도 내 일인 양 몰입해서 편을 들어줬었다.


 하지만 때 늦은 ‘남친’자랑은 묘하게 어긋나 있다. 연애 경험이 쌓였다고 생각할수록 좀 시니컬해지기 마련인 탓이 아닐까.

 자기 딴에는 남자친구가 너무 사랑스러웠던 순간을 아무리 늘어놓아봐야 듣는 입장에서는 ‘엥, 저게 뭐 어쨌다는 거지. 어디가 멋지다고 계속 말하는 거야.’하는 생각만 드니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대화가 되어버린다.


 예를 들자면 한 친구는 남자친구가 식사를 배달시킬 때

 "김치는 저번에 배달시켜서 반 먹고 남겨둔 게 있어."

 하면서 ‘반찬은 필요 없어요’에 체크를 했다는 이유로 그걸 냉장고에 챙겨두다니, 합리적이고 멋진 남자라고 칭찬한 전적이 있다.

 

 하지만 ‘어디가 멋진 거야?’라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다. 애인은 욕을 해도 셀프로 해야 하는 영역인데 하물며 좋은 말에는 맞장구를 칠 수밖에.

 그럼 이 지독한 ‘남자친구’ 타령은 언제 끝날까. 결국 새로운 화제가 생겨야 끝나지 않을까 싶다.


 고양이 얘기를 하는 만남이 있고 주식 얘기를 하는 만남이 있고. 이 친구는 지금 남자친구가 너무 좋아서 머릿속에 가득한데, 이 화제는 좀 일방적일 뿐인 거지.


 나도 하루 종일 회사에 있다 보니

 ‘야, 우리 회사에 진짜 웃긴 놈이 있는데 말이야.’

 아니면

 ‘어제 우리 팀장이 뭐래는지 알아?‘

 이런 얘기나 하고 있으니까.


 최다 빈출 화제가 ‘회사’인 사람보다는 ‘남자친구’인 사람이 조금 더 행복해 보이긴 한다. 오히려 더 지나서 다 결혼하고 애 낳으면 다시 모이는 게 친구라던데. 나도 회사보다 재미있는 화젯거리나 찾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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