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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Sep 05. 2023

단어 파먹기 : 반

반 : 둘로 나누어서 그 한 쪽


 ‘제주 반달살기’라는 말을 봤다. 요즘 많이 떠나는 한달 살기처럼 타지로 가서 보름 쯤 사는 걸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십 사일 살기는 왠지 아쉬울 것 같은데 반달 살기는 조금 더 똑 떨어지고 적당해보인다. “안녕, 즐거웠어!” 하고 깔끔하게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17일 일때도 반달살기라고 하던데 이 경우에는 반달이라고 하면 오히려 날짜를 줄이는 것이 된다. 그래도 십 칠일 살이 보다는 반달살이가 역시 어감이 좋다.


 생각해 보면 대학 때는 스물 다섯살인 선배를 반 오십이라고 놀렸었다. 사실 나이가 오십이 되려면 한참 멀고도 멀었는데 너무 갖다붙여서 놀렸다. 이십 오와 오십 나누기 이. 괜히 반오십이 더 커 보인다.


 한 사람 몫에 못 미치는 사람은 반푼이라고 한다. 칠푼이 팔푼이도 못 되는 게 반푼이일텐데 사푼이 삼푼이라는 말은 없다. 이럴 땐 또 반이면 충분히 적은가보다.


 우리 할머니는 말을 예의 없이 하는 사람을 보면 “저 놈은 쌀알을 반알씩만 먹고 자랐나.”하셨다.

 욕하는 말 치고는 후하다. ‘저런 쌀알도 못 얻어먹고 자란 놈 같으니라고’ 하지 않는 게 어딘가.


  반은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오차에 인심이 넉넉한 계량이다. 97을 올려서 100으로 치면 좀 양심불량 같은데 43이나 56은 대충 ‘반’이라고 뭉뚱그리기도 한다.

 반밖에 없어서 한참 모자라기도 하지만 반이나 있어서 풍족하기도 하니 써먹기 나름, 생각하기 나름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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