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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Sep 06. 2023

새 커피머신에는 선악과가 달린다

 큰맘 먹고 커피머신을 샀습니다. 커피 맛을 전혀 모르는 저에게는 제법 큰돈이었습니다. 커피란 식후엔 입가심으로, 회사에서 화가 솟구칠 때는 속에 천불을 가라앉히는 용도로 '쏴악-' 하고 목구멍에 털어 넣는 것. 쓰면 '어휴 쓰다, 써. 아주 쓴 커피야.' 하면서 마시고 쓰지 않으면 "음, 커피.' 하고 그냥 마시는 것.

 그런 사람이 몇 십 가지나 되는 커피 중에서 골라 마실 수 있다는 캡슐 커피 머신을 산 것입니다.


 열심히 마셔서 본전을 뽑아야 하니 여러 종류의 커피 캡슐을 샀는데 사실 구분이 안 가요. '이건 진한 맛에 캐러멜 향이 난대.' 하고 아무리 마셔도 어제 마신 가벼운 베리 향 커피와 다른 점을 모르겠어요.

 오히려 문제라면 회사에 있는 커피 머신으로 내려서 마시는 공짜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평소처럼 텀블러에 담아와 마시려는데 아주 쓰고 텁텁한 맛이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다시 봤지만 똑같은 원두와 똑같은 기계. 다들 평소 같은 맛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회사 탕비실 커피는 원래 맛없었어요. 오늘도 평소처럼 맛없을 뿐인걸요."

 여전히 맛있는 커피는 모르는데 맛없는 커피는 알게 되다니.


 알루미늄으로 된 동글동글한 커피 캡슐은 사실 선악과 열매였던 거예요. 저 커피는 죄악이야! 하고 회사 커피를 몰아냅니다.

 '아냐, 회사 커피는 잘못이 없어. 공짜잖아. 지난주에도 잘만 마셨어. 몰아낼 거라면 회사를 쫓아내 줘!"

 아무리 외쳐도 제 간사한 혓바닥은 들을 줄을 모릅니다.


 사람 입맛이란 올라가긴 쉬워도 내려오긴 어려운 것. 오늘도 퇴근 후에 집에서 디카페인 캡슐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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