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맘과 워킹맘 그 사이 어디쯤
문득 우울했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가는데 육아를 시작하고는 나의 세상만 뚝 떨어져있는 것 같아서.
혼자였을 때 나는 전 세계를 누비는 여행자였고, 두려울 것이 없는 도전자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성장하고, 끝없이 열려있는 듯한 기회의 문을 두드리고자 달렸다. 인물검색에 나올만큼 유명한 사람이 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속한 세상에서 어느 정도 나의 노력과 성취를 인정받아가고 있다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나는 끊임없이 도전해야하고 성장해야하고 완벽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지쳐있었다. 사람들에게 내가 더 멋있어 보일수록, 부족하고 시시한 내 진짜 모습이 드러나진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알맹이없이 껍데기만 가진 사람으로 소비되어지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부끄러워 숨어버리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싶다는 생각에 공부를 해야겠다 결심하고 대학원을 왔지만, 깊은 고민 끝에 이 길을 선택하고도 아직까지 매일같이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고 있다. 과연 공부가 답일까, 몸이 부서지도록 더 많은 일을 하고 대중의 인기를 얻기위해 노력해야했던건 아닐까. 사업을 확장하고 실무경험을 더 쌓아야했던 건 아닐까. 뭐 사실 정답은 없는 선택이었다. 어떤 길을 선택했어도 나는 지금처럼 계속 불안했을테니까.
학문을 선택한 배경에는 상대적으로 육아와 병행하기가 쉬울 것 같다는 판단도 있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모래성같이 쌓아진 나의 경력이 와르르 무너지더라도 괜찮은 안정감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어도 가족만큼은 변함없는 나의 버팀목이 될테니까. 막연히 ’행복한 가족’이라는 이상을 쫓다가 나의 삶에 대한 충분한 대책없이 육아를 시작한건 아닐까, 요즘의 나는 뭐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할 때도 있지만 결국 그때로 돌아간다해도 분명 똑같은 선택을 할거라는 건 확실하다. 그만큼 불안감 가득한 나에게는 절대적 안정감이 절실했으니까.
출산 후 뭉텅이씩 빠지던 머리가 다시 나기 시작하면서 가르마에 잔머리가 빼곡하다. 옷장을 아무리 뒤적여봐도 입을 옷은 하나도 없다. 이제 아줌마가 되어버려서 더 이상 20대 아가씨같은 옷이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워낙 패션이나 뷰티에 능숙한 인간도 아니거니와 나를 꾸미는 일에 투자할 여유와 시간도 없는 지금이지만, 그래도 못생긴 내 모습을 보면서 우울해지는건 어쩔 수 없다.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운동 좀 하라는 남편의 말에는 가끔 화가 난다. 니가 하루종일 애 보면서 일하고 공부하고 있어봐라 운동할 틈이나 나는지. 운동은 안하는데 왜 온 몸은 항상 두드려 맞은 것 같은지. ‘안 예쁜 여자는 없다. 게으른 여자만 있을 뿐’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나는 게으르지않은 것 같은데 왜 내 모습은 게을러보이는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또 문득 우울해진다.
“아무리 힘들어도 애 웃는 얼굴 보면서 살아.”
애 때문에 자기 삶을 포기하고 사는 것 같아 안쓰러워 보였던 ‘어른’들의 말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그 말에 담긴 헤아릴 수 없는 깊이도.
도민이의 웃는 얼굴을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행복이 뭔지는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나를 닮은 존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존재. 이 세상에 더 이상 ‘내’가 존재하지않더라도 괜찮다. 너만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주면 좋겠다. 이런 마음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또 눈물이 찡해온다. 슬프기만한 눈물 말고, 찐한 행복과 감동이 담긴 눈물이랄까.
일상은 너무 힘들지만 누군가의 손에 맡기지 않고 오롯이 내가 이 아이의 1년만큼은 함께 하기로 마음먹은 건,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이런 우울함과 행복함을 깊이 경험하고싶어서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세상의 중심이 나였던 삶에서는 불투명한 미래가 불안했다면, 세상의 중심이 가족이 된 지금의 삶에서는 도민이가 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미래가 기대된다. 이게 어쩌면 내가 진심으로 원했던 절대적 안정감일 수도 있겠다. 내 인생의 불확실함과 바꿀 수 있는 확실한 행복.
도민이를 만난 후 나의 세상은 조금 더 채도와 명도가 짙어진 느낌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문득 우울하지만, 깊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