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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Oct 06. 2020

육아에 졌다

'나'의 자아가 육아에 패배해버렸다.

졌다. 완벽히 졌다. 이건 내가 진거다.


밤 늦게 동네 근처의 심리상담센터를 검색하는 나를 보면서 느꼈다. 나는 졌다.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해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나의 멘탈은, 나의 자아는, 지고야말았다.


자신이 있었다. 마음의 준비도 할만큼 했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감의 근거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수많은 엄마들이라 답하겠다. 애를 키운다는 건 세계여행을 한다거나, 방송출연을 한다거나, 번지점프를 한다거나 하는 사례보다는 흔한 사례였으니까. 다들 잘 하고 있는데 나라고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가 그 어떤 것보다도 힘들다는 것 역시 주변에서 익히 들어 알고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도전의식이 생겼던걸까. 육아에 도전장을 내고 나는 육아의 힘듬까지도 이렇게 잘 이겨내고 있다고 말하고싶었던걸까.


주변에서 말하는 나는 언제나 슈퍼긍정왕이었다. 어떤 시련이 와도 나만의 긍정파워로 굳건히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거라던 나였다. 이렇게 꽤나 강한 자아와 그를 바탕으로 한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던 나는 ‘나라고 못할게 뭐야’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아이도 부족함없이 잘 키우면서 내 일도 놓지않는 두 마리 토끼잡기에 성공한 나를 항상 상상하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 새벽 2시 12분. 낮에 마신 커피 때문에 잠 못드는 나를 탓하며 미친듯이 심리상담센터를 검색하고 있는 나. “난 진짜 못 하겠어. 나는 XX이야.” 이 말을 홀로 되뇌이며 울음을 삼키는 날 보면서 이건 완벽하게 진 거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단지 육아 자체의 힘듬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회에서 여겨지는 나의 하찮은 존재감. 외모변화로 인한 자신감 하락. 내 시간을 맘대로 쓸 수 없다는 좌절감. 나보다 무언가를 훨씬 잘 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자격지심. 세상에서 오직 나에게만 주어지는 책임감과 의무감. 육아도, 일도, 와이프도, 딸도, 며느리도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못하고 있는 못난 나를 보면서 느끼는 자괴감.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마음을 감싸며 싹틔운 우울감은 사라질 줄을 모르고 커져만 갔다.

그렇게 패배를 인정하기로 했다.

나, ‘윤지민’의 자아는 지금 육아에 패배했다고.


참나, 근데 엄마는 우울할 틈도 없다는게 반전이다.

패배했다고 인정하겠다는데도 패배를 누릴 자유조차 없다.


내일 새벽같이 깨서 나를 흔들어 깨울 너를 생각하면 빨리 잠들어야하는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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