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의 샤워시간이 사치가 되어버린 요즘
"엄마 샤워 좀 하면 안 될까?"
향긋한 샴푸향 맡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비누에 거품을 내고, 겨털이든 다리털이든 털 관리도 좀 해서 매끈한 살결을 만져보고, 젖은 머리에 에센스를 바르고 빵실빵실하게 드라이를 넣는 기분 좋은 경험 . 딱 15분. 아침에 딱 15분이면 가능했던 일이 이제는 꿈에 그리던 일이다.
인간으로서 내 몸을 씻고 가꾸는 게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잊어버렸다. 육아를 시작하고 이런 15분은 사치 중의 사치. 1분이라도 엄마가 안 보이면 세상이 멸망한 듯 울어제끼는 아이를 두고 화장실에서 즐기던 혼자만의 행복, 아니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 권리가 이제 사치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엄마"의 화장실 사용풍경은 어떠하냐구?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일단 화장실에 문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바운서에 가만히 누워있던 시절에는 그래도 화장실 문 앞에 바운서를 가져다놓고 아기와 눈 맞추면서 샤워나 볼일을 보는 것이 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큰 볼 일이 급할 때에도 문은 활짝 열어두고 너의 새로운 후각 경험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스스로 잡고 일어나려고 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 바운서에는 도통 안 앉아있으려고 하면서 문이든 뭐든 잡고 일어나려하는데 샤워 중인 나는 아이가 넘어지더라도 잡아줄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한동안 샤워는 아기가 곤히 잠든 밤에만 허락되었고, 피치못할 상황에 신호가 왔을 때는 아기띠를 메고 변기에 앉았다. 누군가와 이토록 밀착교감하며 볼일을 보는 경험은 정말 다신 없어야할 것이다. 후우.
이제 돌이 지나고 혼자 움직이는 것이 조금 자유로워진 이후에는 문간에 앉혀놓는다. 아무리 아들이라지만 누군가 날 뚫어지게 보고있는데 샤워를 하고, 그 와중에 가끔 울먹거리거나 바닥이 미끄러운 화장실에 들어오려고 할 때면 주의를 끌기 위해 벌거벗은 채 우르르까꿍에 노래에 춤에 별 난리굿을 다 해줘야한다. 진심 현타가 오는 순간이다. 내 생애 누구 앞에서 이렇게 부끄러운 짓을 해봤는가 싶다. 핑크퐁에 빠지기 시작한 후로는 가끔 샤워를 하기 위해 티비를 틀어주기도 했다. 티비가 지루해서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이려 하기 전에 나는 내가 샴푸를 했던가, 린스는 했던가 싶을 정도로 폭풍같은 샤워를 마쳐야한다.
오롯하게 내 몸을 살필 시간이 고작 하루 15분도 허용되지않다니. 언제쯤 엄마도 샤워시간은 혼자서 보내고 싶다는 걸 이해해줄 수 있을까. 아직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