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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Oct 27. 2020

아침을 먹어야 건강하다고 대체 누가 그랬어

내 아침은 챙겨본 적 없어도 내 새끼 아침은 챙겨야지

아침을 먹어야 건강하다. 대체 나는 왜 이 명제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야 하는 불변의 진리로 여겨왔을까. 어릴 때부터 나의 외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아침은 황제처럼, 점심은 왕처럼, 저녁은 거지처럼'을 연호하시며 내게 아침의 중요성을 설파하셨다. 이 말의 기원을 찾아볼 생각도 못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게 독일 속담이라네? 한국뿐 아니라 독일에서까지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이건 글로벌 진리일 수도 있겠다.


이런 외할머니의 깊은 가르침 아래 평생을 살아오신 우리 엄마. 우리 엄마에게도 역시 자식들의 아침을 챙기는 것이 꽤나 중요한 의무였다. 아침잠이 유독 많은 우리 엄마도 나의 학창 시절엔 아침을 꼭 챙겨주셨다. 내 기억에 가장 자주 먹었던 건 멸치볶음 주먹밥. 촌각을 다투며 뛰쳐나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엄마는 대충 싼 주먹밥이라도 내 입에 하나씩 쏙쏙 넣어주며 학교를 보냈다. 학창 시절의 나는 어찌나 밥순이였는지 아침에 하얀 쌀밥 아니면 먹질 않았다. 그래서 그나마 좀 일찍 일어나는 날에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미역국이나 사골국에 밥을 말아주며 내 앞에 앉아 반쯤 뜬 눈으로 김치를 한쪽씩 찢어서 숟가락 위에 올려주셨다. 엄마가 챙겨주는 아침을 나는 꽤나 큰 어른이 되어서까지 얻어먹었다. 집에서 출퇴근하며 직장생활을 하던 20대 후반에도 엄마의 아침밥을 얻어먹고 다녔으니 말이다.


내가 받는 입장일 때는 몰랐다. 내가 챙겨줘야 하는 입장이 되니 나 역시 우리 집안의 가풍에서 딱히 벗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성인이 된 이후 내 손으로는 나를 위해 제대로 된 아침 한 번 챙겨 먹어본 적 없는 인간이 내 새끼는 아침을 먹어야 한다며 잠결에 꾸역꾸역 뭐라도 만들고 있는 거 보니 말이다. 그리고 이 짓을(휴) 앞으로 20년, 아니 길면 30년(설마)까지 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까마득할 따름이다.


이유식을 할 때는 그나마 좀 나았다. 일주일치 이유식을 미리 만들어 냉장고와 냉동실을 잔뜩 채워놓고 그날의 식단(혹은 기분)에 따라 하나씩 꺼내서 덥혀주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돌이 지나고 사람 음식을 먹기 시작하니 매일 밤 내일 아침엔 또 뭘 먹여야 하나 고민하며 잠들게 된다. 밥솥에 밥은 있던가. 아기 먹을 김이 다 떨어져 가는 것 같은데. 먹일만한 과일은 뭐가 있더라. 이렇게 고민만 하다 양심 상 내일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맛있는 아침을 해주고 싶다는 마음만 간직한 채 곯아떨어져버리는 날이 대부분이다. 결국 아침에는 나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반쯤 뜬 눈으로 백 원짜리 동전만 하게 대충 싼 주먹밥을 만들어 입에 쏙쏙 넣어주는 게 최선이다.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개월 수가 되자 이제 자기가 좋아하는 아침 메뉴를 찾는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배가 고픈지 냉장고로 달려고 손을 내밀며 "부-"라며 최애 과일인 블루베리를 찾는다. 그렇게 블루베리 20알. 다 먹고 나면 또 손을 내밀며 "계-ㄹ"을 외친다. 그렇게 구운 계란 1알. 거기다 가끔 치즈 한 장, 아기 요구르트 한 개. 이 정도 먹이면 대충 아침을 때울 수 있다.


나는 역시 우리 엄마보다 게으른 엄마가 맞다. 요즘 우리 집에서는 대충 싼 멸치 주먹밥이 나름 특별한 아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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