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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창 Mar 09. 2018

[아버지 vs 아빠 1편]

음악과 함께하는 아빠의 수다 03  - 1

작년 8월에 네게 보낸 편지 기억하니? SAT시험을 하루 앞둔 너에게 아빠가 보낸 편지말이야. 좀 쑥스럽지만 다시 한번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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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시험을 치를 너에게 조금은 생뚱맞게 아빠의 아버지, 너에게는 할아버지 얘기를 들려주고 싶구나. 


할아버지는 2008년에 돌아가셨으니 네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지. 너도 기억이 남아있겠지만 할아버지는 참 엄하셨다. 아니, 무서우셨다. 자식들에게 늘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셨고 틈만 나면 야단을 치셨다. 안아 주신 적도 없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경우도 거의 없으셨지. 


그러던 할아버지가 막내인 아빠에게 허둥지둥, 주섬주섬하셨던 모습을 보이신 적이 있다. 1986년,아빠가 학력고사라고 부르는 대입시험을 치르던 날이었지. 할아버지는 막노동에 가까운 카서비스센터를 운영하셨었다. 새벽부터 손님이 오는 경우가 많았어. 고장이나 펑크난 차량이 새벽부터 들이닥치는거지.  


그날도 새벽부터 기름을 묻히시며 일하셨던 걸로 기억이 나는구나. 할아버지께 늘 그렇듯 쭈뼜하며 인사를 드렸어. “저 시험치러 갑니다.” 라고. 근엄하게 “그래~”라고만 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리오라 하시더니 꼬깃한 천원짜리 하나를 바지에서 꺼내시더니 “이건 차비해라”. 또 천원짜리 하나를 다른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시더니 “이건 신경안정제 사묵고” (새벽같은 아침에 어디서 신경안정제를 사먹겠니) 또 천원짜리 하나를 꺼내시더니 “이건 점심 사묵고”. 또 천원짜리 하나를 허둥지둥 꺼내시더니 “이건……. 그냥 가져가거라” 


인생에 중요한 대학입학시험이라는 것이 평소 할아버지 모습을 무너지게 했나봐. 사실 할아버지는 정이 많으시고 사랑도 많으신 분이라는 것을 돌아가시고 한참 지나 알았다. 무서운 얼굴을 하시고 근엄하셨던 모습은 초등학교도 가보지 못하신 학력으로 거친 세상속에서 당신을 지키고 가정을 꾸려 나가시기 위한 하나의 페르소나(가면)일 뿐이었다는 것을. 

할아버지는 늘 힘에 부치셨나봐. 특히 배우지 못한 사실이 할아버지의 사회생활을 더 힘들게 했겠지. 


그래서 자식교육에 대한 교육 열이 대단하셨다.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매운 고추가 머리를 나쁘게 한다는 말을 어디서 들으셨는지 덕분에 우리 3형제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할아버지 앞에서 고추를 못 먹었다. 공부 못하면 자전거 가게에 점원으로 일하게 한다는 협박(?)도 한달에 한번 정도는 해주셨었다. 공부하겠다고 하면 남의 자식도 먹여주고 재워주며 공부를 시켰던 분이다. 


할아버지는 외국에 대한 궁금증도 많으셨어. 미국을 처음 출장 다녀온 아빠에게 미국이 어떻더냐며 그렇게 꼬치꼬치 물으시더구나. 아마 할아버지는 미국을 굉장히 가보고 싶으셨나 보더라. 

할아버지가 지금 너를 보면 참 대견해 하실텐데. 뵙고 싶구나.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주섬주섬 천원짜리를 꺼내셨던 마음이 지금 아빠의 마음이다.  


천원짜리 한 장 받아라.  

시험장에 여유있게 도착해서 차분히 시험을 치르거라. 


천원짜리 한 장 받아라.  

시간안배에 신경쓰며 모르는 문제에 매몰되어 아는 문제를 놓치지 말아라. 


천원짜리 한 장 받아라.  

시험이 어렵거든 경쟁자들도 어렵겠구나 생각하며 여유를 가져라. 


천원짜리 한 장 받아라.  

결과는 감사함으로 받자. 


마지막 천원짜리 한 장 받아라.  

최선을 다한 너에게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인정과 칭찬을 담은 것이다. 

“수고했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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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를 다시 보니 조금 웃음이 나기도 하네. 너 시험 잘 보게 해달라며 니엄마와 함께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어. 또 외할머니께도 기도 부탁드렸지. 그것도 성이 안찼는지 할아버지 음덕도 빌리자는 마음도 컸나봐. 그래서 할아버지 이야기와 함께 시험 잘 보라는 편지를 보낸거야. 아마 군위에 계시는 할머니가 절에 다니셨으면 불공을 부탁드렸을지도 몰라. 시험 결과는? 기대한 것에 비하면 폭망 수준이었지.


기대에 못미쳤지만 네게 보낸 편지 덕분에 약속은 지킬 수 있었어. 결과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기로 했으니까 말이야. 정말 감사했어. 그래서인지 지금 대학 입시 결과도 감사한 결과들로 채워지고 있다 생각해.


할아버지는 늘 아빠의 기억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계셔.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그래서 생겨난지도 모르겠네. 나도 너에게 언젠가 돌아가신 우리 아빠가 되겠지. 내 피가 너에게 전해져 있으니 너도 이 아빠를 오랫동안 기억할거야. 


좀 무겁고 어려울 수 있지만 꼭 한번 얘기했으면 했어. 하늘이 맺어준 관계, 아버지 혹은 아빠 그리고 자식에 대해서 말이야.


글이 너무 길어질 수 있으니 다음 편지에 본격적으로 얘기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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