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함께하는 아빠의 수다 04 - 2
<미칠 정도로 빠져버린 동아리 활동, 대학교 4학년인데?>
뭘해도 대충하던 아빠가 '미칠 정도로 빠진' 것은 통기타 모임이었어. 모임 이름은 '못갖춘마디'. 4학년을 앞둔 3학년2학기 말에 시작했다. 통기타로 대중가요, 팝송 부르는 모임. 그런데 왜 그렇게 늦게 시작했냐구? 군대가기전에는 그런 모임이 없었거든.
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거창해진다. 왜냐하면 아빠의 '왕년에 한가닥' 한 이야기거든. 그냥 우째 우째 하다가 3학년2학기 말에 처음 발을 들이고 4학년때 회장이 되어서 '눈부신 활약'을 했다는 뭐 그런 전설같은 얘기야.
거두절미하고 대학교 4학년때의 덕후질이 어떤 명암을 가졌는지 얘기해볼게. 물론 내 자랑은 심심치 않게 들어간다. 이해해라. 아빠의 깊은 병이잖아.
<명>
* 동아리 활동으로 인한 기타, 노래 연습으로 지금도 좀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 처음 가입했을 때 모임에 불과했던 '못갖춘마디'를 내가 회장하던 시절에 학교 정식 동아리로 인준받았다. 당시 우리 학교는 매우 작았다. 건물이 턱없이 모자라 신규 동아리에게 줄 공간이 없었어. 그래서 신규 가입을 불가능에 가깝게 해둔거지. 4차에 걸친 심사. 무수한 밤을 지새며 노력해서 신규 동아리로 인준받았다.
* 학교에서 꽤 유명인사가 되었어. 세번의 정기공연, 축제에서 노래도 해보고, 5천명이 모인 대규모집회에서 노래도 해보고, 학교 가요제에 심사위원으로 추대되어보고 말이야.
* 지금은 학교에서 제일 큰 동아리인데 나를 '전설의 선배'로 기억해주는 후배들이 꽤 있다.
*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호감을 느낀 여학생이 원해서 소개팅 한 적도 있다. 와우. 호박이 넝쿨째. 결과는 참담했다. (무대에 선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멘트를 남긴채)
<암>
* 3학년 1학기에는 성적이 꽤 우수했는데 이 동아리를 시작한 3학년2학기부터 성적이 급격히 떨어진다. 4학년 1학기도 바닥, 2학기는 거의 학사경고 직전까지 갔다.
* 취업준비에도 너무도 소홀했다. 동아리일을 우선하다보니 취업설명회에 참석 못하거나 심지어 면접을 못간일도 있다.
* 정말 입사하고 싶었던 광고회사 추천장을 받은 적 있다. 동아리 일 하느라 미루다가 마감날 접수하러 갔다가 서류미비로 접수를 할 수 없었다. 하필 토요일이라 서류를 뗄 수 없었어. 대학 기간동안 가장 땅을 쳤던 순간이다.
* 학교 공부는 물론 취업에 필요한 필기시험 준비를 못한다. 좋은 회사는 학점이 높거나 필기시험을 치뤄야했다. 둘 다 준비가 안돼서 취업의 문은 좁아졌고 눈높이를 더 낮추는 수 밖에 없었다.
* 친구들이 좋은 회사에 입사하는 것을 보며 느낀 패배감과 좌절감이란. 졸업 후 2개의 회사를 전전하다가 결국 취업재수를 통해 필기시험을 치르고 제대로 된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 대학교때 모자른 공부는 직장생활내내 발목을 잡는다. 새벽에 일어나 영어공부에 매달려도 봤지만 한계에 부딪힌다. 대학다닐 때 머리와 나이들어서의 머리는 거의 다른 동물의 머리라고 할 수 있다.
* 당시 생활의 흐트러짐도 많았다. 겨울내내 입었던 파카를 제때 맡기지 않아 다시 입을 수 없어 버려야했어. 그깟 옷하나가 뭐라고? 그렇지 않아. 이런 징후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어. 자취방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어지러져 있었고 급기야 방에 불이 난다. 모든 살림 다 태우고 친구나 선후배 집에서 기생(?)해야 했었다.
*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용돈은 동아리 일 한답시고 늘 월초에 다쓰고 한 달중 20일은 궁핍하고 초라하게 살았다. 생활이 무너졌는데 돈관리가 계획적으로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대학교 4학년때의 어지러진 생활이 직장을 가서도 그대로 답습이 된다. 결혼하고서 니 엄마의 엄청난 카리스마(?) 질긴 악연을 끊게 되었다.
......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이지. 어떤 사람은 내 '덕후질'을 듣고 '잘한 것'이라고 얘기해준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라. 얼마전 너에게 보냈던 '일상'에 대한 글을 기억하니? 캐논변주곡이 다양하게 연주되지만 화음진행을 철저하게 지키잖아. 화음은 일상과 같은 것. 아빠의 덕후질은 분명 일상을 깨는 것이었어.
대학생활의 클라이막스인 4학년의 일상은 학업과 취업준비에 맞는 화음으로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 중요한 클라이막스에 나는 화음에서는 벗어난 불협화음으로 뒤덮어버린거지.
그 연주회는 클라이막스에서의 깨어진 화음으로 많은 후폭풍을 남겼다. 그 폭풍은 선채로 그대로 맞았고. 다만 그 불협화음 위주의 연주를 듣고 아주 극소수의 분들이 연주가 특이하다고 칭찬을 해준거지.
<나를 답습하는 건 아닐까?>
지난주 너와 통화를 하고 나서 이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어. 노래와 레코딩에 심취해 있는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사하기도 했고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거든. 니가 노래하고 믹싱한것 한번 들어볼까?
감사한 것은 그런 덕후질을 하면서도 아빠와는 다르게 균형감을 지켜줘서 너가 대견하고 감사했다. 학교생활에 충실했다는 것을 너가 직접보여주었으니까.
그래도 너의 예사롭지 않은 덕후질이 음악 뿐 아니라 드립커피, 자동차상식, 시계 구조 및 디자인등으로 다양하다는 점, 지금이 마지막 학기로 유종의 미가 절실하다 싶어 이야기하는거야.
앞으로 너의 덕후질을 위해 한가지만 부탁하자. 딱 한가지야.
<지금처럼 이야기 해줘>
지난번 통화에서 니가 레코딩한 노래를 듣고 로직(믹싱프로그램) 사용한 것을 설명들으며 나는 참 좋았다. 아마추어라 보기에는 너무나 탁월했던 결과물들이 그랬고 과정에서의 디테일함도 전문가 같았어. 나도 관심 많은 부분이라 배울 수 있어서 더 좋았고.
그래서 부탁하는거야. 앞으로도 너의 상황을 지금처럼 알려줘. 응원할게. 아빠도 엄마도 너의 팬이야. 너도 알잖아. 아빠가 덕후질 지원에 후하다는 것.(물론 엄마의 태클도 심하지)
단, 잔소리도 할거야. 일상을 깨는 불협화음으로 간다싶으면 말이야. 니가 불안해 보이거나 믿지 못해서가 아니야. 아빠는 진심 너를 믿고 존중한다. 세계 최고의 골프선수도 스윙 코치를 둔다. 자기 스스로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이 효과성을 더해주니 그런거겠지.
기억해줘. 이야기 해주는 것. 아빠도 그렇게 할게.
봄 오는 소리가 조금씩 더 선명해지네. 가끔 귀 기울여보자.
너의 덕후, 아빠가.